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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순실 부녀와 조선말 '비선실세' 진령군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진령군에 힘실어준 명성황후

나라 기강 해치고 망국 부추겨

대통령, 역사에서 교훈 얻어야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두 차례나 대국민사과를 하고 필요하다면 검찰과 특검 수사도 받겠다고 자청했다. 당사자인 최순실은 검찰에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청와대의 우병우 수석 및 ‘문고리 3인방’도 모두 사표를 냈고 국무총리 후보와 대통령비서실장도 새 사람으로 교체됐다.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다. 비선실세란 아무 관직도 없으면서 최고 권력자의 그늘에 숨어서 권세를 행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최순실 사건을 보면 130여년 전 조선왕조 말기 명성황후의 비선실세 노릇을 하던 진령군(眞靈君)이 연상된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왕비 민씨는 성난 군사들에게 죽을 위기를 모면하고 충주 장호원까지 황급히 도망갔다. ‘대국민 사과’를 할 정신도 없었다. 청국군의 개입으로 대원군이 중국에 납치되고 민씨 일족은 정권을 탈환했다. 왕비 민씨가 50여 일 만에 환궁한 뒤 백성들은 놀랐다. 웬 여자 무당을 하나 데리고 와서 진령군이라는 작호를 내리고 측근에 상주시켰던 것이다.

진령군이라는 무당이 파격적 출세를 한 계기는 왕비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지낼 때 점을 쳐 줬기 때문이다. 왕비가 숨어 지낼 때 민응식이 불러온 진령군이 명성황후가 곧 환궁할 것이라며 그 날짜까지 알려줬다. 우연의 일치인지 신통하게도 그녀가 예언한 그 날짜에 환궁하게 되자 명성황후가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녀는 왕비 민씨의 측근 실세가 되고 곧 부귀영화를 누리게 됐다. 날마다 왕실을 위해 산천기도는 물론이요, 굿판과 제사도 쉴 날이 없었다. 왕비가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으로 신분상승을 한 그녀는 뇌물을 마구 받아 챙기고 양반들을 벼슬에 임명하거나 내쫓는 등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렀다. 과부 진령군에게는 김창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당상관의 관복을 입고 다니며 실세 노릇을 했다.

매천(梅泉)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당시 일부 장·차관급 고위직 대신들도 앞을 다퉈 진령군에게 아부를 했는데 심지어는 진령군을 누님 또는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 자들도 있었다. 진령군은 허약한 세자 순종의 병을 고친다고 굿판을 벌이고 금강산 1만2,000봉에 쌀 한 섬과 돈 1,000냥, 무명 한 필씩을 얹은 것도 이때 일이었다. 그로 인해 국고가 탕진돼도 명성황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진령군만 믿었다.



비선실세 진령군의 세도가 세상을 흔든 지도 어느덧 11년. 목숨을 걸고 진령군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가 있었으니 사간원 정언 안효제였다. 고종은 대로해 그를 전라도 먼 섬으로 귀양 보냈다. 3년 뒤 안효제는 귀양이 풀렸고 다시 벼슬이 내려졌으나 사양한 후 낙향해 버렸다. 권불십년이라 요지부동이던 진령군의 영화도 드디어 망할 날이 왔으니 고종 31년(1894년)이었다. 청일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고 조선에 친일 내각이 들어서자 개화파 새 정부는 진령군을 잡아들여 옥에 가뒀다가 억만금의 재산을 모두 몰수한 뒤 풀어줬다.

그녀는 북묘인 관우(關羽) 사당에서도 쫓겨나 삼청골 오막살이에서 숨죽이고 살다가 이듬해 8월 을미사변 때 일본인들 손에 강력한 후원자였던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그 충격인지 얼마 뒤인 1896년에 죽어버렸다.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최측근 비선실세로 행세하던 진령군의 말로였다.

현대판 진령군 최순실 이야기에서 그녀의 아버지 최태민을 빼놓을 수 없다.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불리고 있다. 라스푸틴은 제정러시아 말기 비선실세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던 인물이다. 지난 2007년 주한 미국대사관이 최태민을 ‘요승’에 비유하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를 지배했었다고 보고서를 썼다. 당시 미 부대사는 보고서에 ‘최태민이 한국의 라스푸틴 같다면서, 최태민 자녀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소문이 많이 퍼져 있다’고 작성했다. 또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은 평범치 않은 관계이며 중요한 시기에 최태민이 박근혜 후보의 심신을 완벽하게 지배했다’고 썼다.

조선왕조가 망해가던 130여년 전의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없는 역사가 단순한 옛날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다.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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