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젊은 화가들이 그린 이상향

금호미술관 '무진기행展'

이진주 등 3040 작가들

묵직하고 감상적 작품 선봬

이은실 ‘중립적 공간’, 170x450cm, 2008년작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산수를 내려다보는 전통 건축이 무척이나 격조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꿈틀대는 욕망이 있었으니, 문 너머에서 그만 흘러넘치고 만다. 더러운 똥색과 탐나는 금빛의 중간 어디쯤이지 싶은 노란색을 내뿜으며. 고상한 분위기를 돋우던 안개는 돌연 음습함으로 바뀐다. 욕정의 항아리는 품위 있고 우아한 건축물이 보여주는 ‘공개된 사회적 위상’의 이면, 즉 ‘은밀한 사생활’이다. 동양화가 이은실이 그린 ‘중립적 공간’이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다”. 청와대와 광화문 사이 삼청로 금호미술관이 기획한 전시 ‘무진기행’은 제목을 차용한 소설가 김승옥의 동명 단편이 그랬듯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무진을 더듬게 한다. 30~40대 젊은 한국화 전공 작가들 14명이 그린 ‘이상향’이라는 주제가 시대적 맥락과 겹치면서 은근하고 묵직하게 때로는 감상적으로도 읽힌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4개층 총 7개 전시실에 90점이 걸렸다.

이진주 ‘기억하는 땅’ 150x300cm, 2015년작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이진주의 ‘기억하는 땅’에서는 숨바꼭질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빌린 숨기고 싶거나 숨어버린 기억을 곳곳에서 찾아낼 수 있다.


이진주의 그림은 재개발의 흔적인 듯 버려진 산귀퉁이 마을을 비춘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주변으로 끊어진 전봇대와 꺾인 나무가 근근이 버티고 여기저기 주인 잃은 물건이 나뒹군다. 동네 꼬마들은 하필 이런 곳을 택해 숨바꼭질을 한다. 찢어진 고무통 속, 차가운 아궁이 뒤, 삐걱거리는 문틈으로 아이들은 몸을 숨겼다. 작가는 “들킬까봐 심장이 터질 듯 뛰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그렸다”고 했다. 눈을 치뜨고 다리를 웅크린 어린아이의 모습은 잃어버렸거나 마치 모르는 일인 양 숨기고 싶은 기억의 파편을 상징하는 듯하다. 작품 제목은 ‘기억하는 땅’이다.

김민주 ‘숲을 그린 까닭’ /사진제공=금호미술관


김민주의 그림은 온전한 나만의 쉼터다. 세필로 수백 수천 번의 붓질을 거듭해 그린, 잎이 겹겹이 둘러싼 숲 속에서 인물은 삿갓만 쓴 채 혹은 벌거벗은 채로 자유롭게 뛰논다. 분주한 일상에서 자신을 불러내 혼자만의 사색을 가져보라 청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복숭아를 따거나 책을 읽다 졸기도 하고 낚시를 하거나 여행을 떠난다.

권순영 ‘고아들의 성탄’ /사진제공=금호미술관




크리스마스 트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요즘이지만 권순영이 그린 ‘고아들의 성탄’에 등장하는 것만큼 우아하고 따뜻한 트리를 보기는 쉽지 않다. 멀리서 본 색조는 고우나 가까이 가면 눈물 흘리면서도 입으로는 미소를 잃지 않는 풍선인형이 보인다. 천사가 나타나 성모마리아의 임신을 축하하는 ‘수태고지’와 같은 제목의 그림도 한 편의 ‘잔혹동화’를 방불케한다. 부인하고 싶지만 우리 현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탱화같은 느낌을 풍기는 김정향의 ‘조력자들의 밤’ 연작에는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심지어 배설도 돕는 존재들이 뒤엉켜 있다. 무조건적인 보살핌이 주어지는 이상적 공간이지만 오히려 끔찍하다.

김정향 ‘조력자들의 밤-너에게 주는 모든 것들’ /사진제공=금호미술관


연필드로잉을 수묵화처럼 그려내려면 몇 곱절의 노동이 필요하다. 강성은 작가는 훈련과 수행같은 작업을 통해 차분한 풍경을 그렸다. 세상이 시끄러우니 조용한 그곳이 이상향이다. 연애사의 장면들을 동양 산수와 현대도시가 어우러진 이미지로 그린 기민정, 외계인인지 귀신인지 모를 존재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세상사를 관통하는 김정욱을 비롯해 서민정·신하순·양유연·임태규·조송·최은혜 등이 참여했다. 내년 2월12일까지. (02)720-5114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