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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칼럼] 금리중독, 재정중독

최저금리에도 경제는 여전히 침체

반복되는 추경도 언발에 오줌누기

기업이 뛰는 것 외에 해법은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얼마 전 “요란한 통화정책의 시대가 가고 재정정책의 시대가 온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애써 완곡하고 점잖은 표현을 구사했지만 그 속내는 단순하지 않다. 정부가 올해 예산을 보다 풍족하게 편성해 경기부양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정부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라는 불만 섞인 요구도 담겨 있다.

이 총재의 주장도 나름 일리는 있다. 한은은 장기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2012년 이후 기준금리를 여덟 차례나 낮춰 1.25%까지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경제는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물론 통화정책의 약발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각국 중앙은행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두 600여 차례나 금리를 내렸다. ‘제로금리’나 ‘양적완화’ 등이 바로 그런 행위를 표현한 전문용어들이다. 이렇게 해서 무려 12조3,000억달러(약 1경4,345조원)를 풀었음에도 경기 회복은커녕 물가 끌어올리기조차 실패한 것이다.

그런 몸부림이 모조리 실패로 끝나자 최근 들어 경제학자들로부터 푸념처럼 들려오는 것이 ‘통화정책 무용론’이다. 화폐공급→금리 인하→총수요 증가→경기회복이라는 경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하긴 그동안의 금리 인하가 시장에서 어떻게 인식돼왔는지를 돌이켜봐도 전달 경로가 망가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금리를 인하하면 경기가 회복되는 게 아니라 ‘오죽 경기가 안 좋으면’이라는 인상을 주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왔을 뿐이다.

그럼 이 총재의 말대로 재정완화 정책으로 방향을 틀면 경제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까. 재정정책의 기본 틀을 제공한 케인스 이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마디로 재정을 무기로 한 경기순환과의 싸움이다. 경기침체가 깊어지면 케인지언들은 빚을 내서라도 재정 투입을 늘리거나 세금을 삭감해 경기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재정적자 증가는 각오해야 한다.



대신 경기가 회복기로 접어들면 민간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세수가 늘어나게 된다. 지출도 줄일 수 있다.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면 그 흑자로 과거의 적자분을 상환한다. 정부 재정은 다시 균형상태로 돌아온다. 그러니 일시적인 적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 이런 일이! 요즘에는 케인스 이론도 잘 먹혀들지 않는다. 임금 수준의 하방 경직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재정적자도 하방 경직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봐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10조9,000억원이었던 재정적자가 이명박 정부 5년간 98조8,0000억원을 기록했고, 박근혜 정부 5년간은 무려 170조원을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케인스 이론의 완벽한 파탄이다.

대중은 나랏빚이 얼마나 있는지에 별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흑자가 나면 흑자가 나는 대로 반드시 새로운 핑곗거리를 들고 와 돈을 써야 한다고 외친다. 특히나 퍼주기로 인기 영합하려는 국회의원들의 탐욕은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한다. 돈 쓸 데는 많고 국가부채는 늘기만 한다.

이주열 총재가 정부 관료들의 금리중독을 비판했지만 이 총재 역시 재정중독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 대신 정부가 재정을 쏟아붓는다 한들 정부 부채만 쌓여가고 결국에는 정부 부채가 민간 부문의 금융까지 구축해버린다. 정부 지출이 민간경제의 생산 부문보다 더 빨리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망국의 길이다.

이제 분명해진다. 민간의 참여 없이 나랏돈만으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한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 모두 절름발이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기업들이 뛰면 된다.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기대수익률이 그보다 낮으면 아무리 투자하라 해도 투자하지 않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금리가 아무리 높다 해도 기업이 생각하는 기대수익률이 그보다 높으면 투자하지 말라 해도 기업은 투자하게 마련이다.

기업이 활기를 띠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보라, 올 상반기로 예정된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공장 가동을 앞두고 지역 경제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공장이 가동되면 무려 3만여명의 직간접 고용창출과 1,000억원의 지방세수를 기대할 수 있다니 오죽하겠는가. 재주는 곰(기업)이 넘지만 돈은 왕 서방(국민)이 먹게 마련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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