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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꼭 아름다워야만 하는가

서울대미술관 '예술만큼 추한'展

숨기고 싶던 본성·분노 등 드러내

현실에 대한 경각심·안도감 부여

올리비에 드 사가장의 4분23초짜리 영상작품 ‘변형(Transfiguration)’의 한 장면




지난 2013년 말 영국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1969년작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가 당시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1,528억원에 낙찰됐을 때, 작품값 못지않게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기괴한 이미지의 그림 그 자체였다. 마치 붉은 고깃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살이 흘러내려 일그러진 인물상은 르네상스 명화처럼 이상적이지도 않았고 인상주의 그림같은 눈의 즐거움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베이컨이 그 기록을 깬 직전 최고가 그림인 뭉크의 ‘절규’나 2015년 1,968억원으로 미술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쓴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등은 한결같이 ‘일반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숨기고 싶던 인간의 본성과 고통·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이었다.

예술에서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찾으려 하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서 채워질 수 없는 부족분에 대한 갈구일지 모른다. 이를 뒤엎듯 미(美)가 아닌 추(醜)를 앞세운 기획전 ‘예술만큼 추한(Ugly as Art)’이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질퍽한 흙과 석고,물감 등을 자신의 얼굴에 마구 짓이겨 바르고는 온몸을 비틀며 절규하는 프랑스 작가 올리비에 드 사가장의 영상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콱 막힌다. 흙빛 피부는 시체 같고, 흐르는 붉은 물감은 피처럼, 눈에 바른 검은 칠은 안구가 제거된 듯한 섬뜩함을 준다. 간간이 들리는 거친 호흡과 울음·비명은 불쾌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서용선 ‘그림 그리는 남자’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이강우 ‘생각의 기록’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이근민 ‘환각의 초상’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최영빈 ‘소리쳐 속삭이다’ /사진제공=서울대미술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작품은 이 뿐 아니다. 탐스러운 감, 아련한 풍경화로 인기있는 화가 오치균의 1980년대 초기작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칙칙하다. 작가적 고뇌가 보는 이까지 좌절의 나락으로 끌어내린다. 역사와 도시를 주제로 펼쳐내는 화가 서용선의 ‘자화상’ ‘개사람’ 등 벌거벗은 몸뚱이들은 혹여 거울에서 마주치더라도 눈 돌리고 싶은, 숨기고 부정하고픈 인간의 추한 모습들이다. 뭉쳐진 내장처럼 보이는 이근민의 그림은 도살장처럼 공포스럽고 신체기관이 뒤죽박죽된 기형적 인체를 그린 최영빈의 작품은 정신분열을 일으킬 정도다.

귤껍질로 만든 함진의 설치작품 ‘무제2017’




작가 함진은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낼 법한 담배꽁초, 썩은 북어머리, 다 쓴 두루마리 휴지, 땅콩껍질 등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게다가 이들 작품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전시돼 자칫 발에 채이거나 버려질 듯 위태롭다. 말라 비틀어진 귤껍질에 주황색 찰흙을 이어붙인 작품은 흡사 살려고 꿈틀대는 인간군상을 보는 듯 측은하다. 작가는 쓰레기를 통해 소비사회의 낭비와 부조리를 꼬집으면서도 절망에서 소생하고자 하는 희망의 의지도 내비친다.

정영목 서울대미술관 관장은 “관습적인 ‘아름다움의 쾌락’도 있지만 추함 그 자체에 대한 쾌락도 존재하며 다른 각도에서 인간의 감성을 건드린다”면서 “시각이미지가 꼭 편하고 만족스러워야 하나, 불편함을 조장하는 전시는 어떨까 질문을 던져본 자리”라고 말했다. 추한 작품들이 주는 불쾌감은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자극하고 우리 삶이 그 지경까지 비참하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전시장 밖으로 나와 쐬는 공기가 예전과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5월14일까지. (02)880-9504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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