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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칼럼] ‘가짜뉴스’부터 처벌하라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통합 저해하는 현대판 '기군망상'

외국 조롱에 국가위신 추락까지

국정 최우선 개혁과제로 척결해야





대통합과 적폐청산. 문재인 대통령의 2대 목표다. 둘 다 시급한 과제지만 문제는 서로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지지만 갖고 밀어붙이기도 어렵다. 가령 4대강 사업 재조사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78.7%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다수 국민은 적폐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통합의 1차 파트너인 야당은 바로 ‘정치 보복’이라고 대응했다. 대통령의 방침을 지지하는 야당 의원도 더러 있다지만 국회 의결 정족수인 60%를 넘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소야대와 국회 의석 분포를 볼 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대통령을 도와줘야만 개혁과 적폐청산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쌓인 폐단을 척결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대선 유세 과정에서 각 정당이 공통으로 제시한 공약에서 과제를 추리는 방법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최근 이런 방안을 제시했다. 각 당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은 명분 때문이다. 자신의 공약 사항을 정책화하겠다는 데 반대할 정치인은 많지 않다.

적폐청산의 두 번째 방법은 ‘가짜뉴스’의 척결이다. 명분이 충분하다. 정당마다 ‘가짜뉴스 발본색원’을 주장했지 않은가. 적어도 명분에서는 정치권의 합의가 이뤄진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가짜뉴스 규명과 근절은 두 가지 이유에서 어떤 정책 과제보다도 시급하다. 첫째, 더 이상의 국론분열을 피할 수 있다. 둘째, 한국이 외국의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국격의 추락도 방지할 수 있다. 가짜뉴스를 파악하고 처벌하는 데는 돈도 그다지 들어가지 않는다.

가짜뉴스는 가족마저 파괴한다. 지인의 가족은 가짜뉴스 때문에 2개월 전부터 쪼개졌다. 겨울 내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손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할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분노에 휩싸였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판결 직후부터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헌재 재판관들이 호남 출신의 어떤 정치인에게 200억원씩 뇌물을 먹고 밤새도록 질펀한 술잔치를 벌였다’고 믿는다. 손자를 볼 때마다 당신이 믿는 사실을 전파하려 애쓴다. 대선을 앞두고 할아버지는 더욱 조바심을 냈다. 아들과 손자에게는 ‘신문에도 난 사실을 왜 믿지 못하느냐’고 다그쳤다. 인자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제는 어디에도 없다.

할아버지가 봤던 가짜뉴스가 특정 연령대에서는 여전히 먹힌다. 나라 망신도 유발한다. 한국은 외신을 악의적으로 번역하거나 짜깁기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외신들이 한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떠오는 자사 발 보도를 공식 부인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사회적 유대감도 좀먹는다. 태극기를 흔드는 노년층과 촛불을 들었던 젊은 층이 생면부지이면서도 다투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바로 어제도 오랜만에 친구와 노포(老鋪)에서 만났으나 옆 좌석의 노인들과 장년층의 다툼 탓에 흥이 깨졌다.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이처럼 분열된 적은 일찍이 없다. 가짜뉴스 탓이다.



인간이란 본디 믿는 것만 믿고 보고 싶어하는 것만 찾기 마련이다. 가짜뉴스는 이런 틈을 타고 파고든다. 가짜뉴스로 굳어진 신념체계는 또 다른 가짜뉴스를 만드는 영양분으로 작용한다. 가짜뉴스의 배포 규모를 보면 거액자금이 조직적으로 투입됐다는 의심이 든다. 급조된 제호를 걸고 가짜뉴스로 도배된 신문이 수백만부씩 인쇄, 배포됐다면 조직범죄에 해당된다. 대통합이 아무리 중요해도 이를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름을 그대로 놓아두는 치유란 불가능하다. 통합도 진실의 바탕 위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승자라면 다양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웬만한 허물은 애써 눈감아야 하지만 가짜뉴스만큼은 예외다. 중벌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우리의 지난 역사에서도 ‘기군망상(欺君罔上)’은 대역죄에 준하는 중형을 받았다. 임금에게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는 탓이다. 강성했던 고구려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궁예는 거짓 정보에 현혹돼 왕비와 자식들을 참혹하게 죽이고 나라마저 신하인 왕건에게 빼앗겼다. 조선을 개혁하려던 조광조 역시 악의적인 모함으로 죽었다.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한 이유도 파당별로 판단이 갈렸던 탓이다. 현대 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을 속이는 행위는 ‘기군망상’의 죄에 다름 아니다. 가짜뉴스의 근절은 무책임한 언론 보도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다. 검찰과 경찰이 가짜뉴스 발본색원을 약속했건만 감감무소식이다. 속도를 내기 바란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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