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한미 군사훈련 축소 가능성’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 불씨가 한미 정상회담에까지 옮겨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상회담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불거진 문 특보와 미국 국무부의 신경전으로 북핵 문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 더 나아가 한미 군사훈련과 전략자산 도입 등을 놓고 첫 정상회담 테이블에서부터 대립을 벌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반면 문 특보는 북한 핵 동결 시 미국의 전략자산과 한미 군사훈련까지 축소할 수 있다고 밝혀 북핵 해법에 대해 큰 간극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문 특보가 특보라는 지위는 있지만 개인 자격의 방문”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특보의 발언은 “한국이 운전석에 앉고 미국이 조수석에 앉아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고 현재는 제재와 압박을 해야 할 때”라면서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북한에 대한 미국 중심의 대북 제재 일변도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의지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가 사드 도입으로 발생한 중국의 경제 보복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해온 만큼 모종의 시그널을 중국에 보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과 일본을 통한 미국의 동아시아 우위 전략에 대해 중국 측의 경계심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직접적인 제재를 요구할 수 있는 외교적 카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얼리샤 에드워즈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우리는 이런 시각이 문 특보의 개인적 견해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을 반영한 게 아닐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것은 이미 문 대통령이 사실상 전개된 사드에 대해서도 제대로 환경영향평가를 거치겠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전제로 문 특보가 한미 군사훈련과 미국 전략무기 도입의 축소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은 그간 한국 정부가 견지해온 대미 기조에 비해 강경한 자세로 해석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우선 문 특보의 발언으로 번진 논란을 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굳건한 한미 동맹은 문 대통령의 외교 철학 중 바탕이 되는 것”이라며 야권에서 제기되는 우려에 반발했다. 18일 임명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실무 준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 장관은 임명 후 바로 간부회의를 개최하고 이후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등 관련 실·국으로부터 한미 정상회담 준비 상황과 북핵 대응 등 일련의 보고를 받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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