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인 중국 기업들이 일본 현지생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업체를 인수하거나 연구개발(R&D) 거점을 설립하는 데 중점을 뒀던 중국계 자본의 일본 투자가 이제 생산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중국 내 인건비가 급등하고 경기가 주춤해진 가운데 선진 인프라와 기술인력을 갖춘 일본을 생산기지로 활용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점차 늘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때 산업공동화에 시달렸던 일본이 새롭게 ‘메이드 인 재팬’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가 지바현 후나바시시 소재의 공장 부지 및 건물을 인수하고 올해 안에 라우터 등 네트워크 장비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29일 보도했다. 중국 기업이 일본에 공장을 세워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화웨이의 초기 투자규모는 50억엔(약 500억원)이며 추가 투자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가 일본 현지생산에 나서는 일차적 이유는 현지 수요 증가다. 일본의 대형통신사인 소프트뱅크가 사물인터넷(IoT)·고속인터넷망 설치 등을 적극 추진하며 네트워크 중계기인 라우터 수요를 늘리는 상황에서 소프트뱅크에 네트워크 장비를 납품하는 화웨이로서는 안정적인 제품 공급과 비용 절감을 위해 현지생산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화웨이의 이번 결정은 한 기업의 경영판단을 넘어 중국계 자본의 대일 투자가 ‘생산’ 단계로까지 진입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계 자본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격적인 해외 인수합병(M&A)으로 여러 일본 기업들을 품에 안았지만 이들의 주된 목표는 브랜드 획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숙련된 일본 생산인력을 직접 채용해 중국 기업의 장점인 가격 경쟁력에 일본의 품질력을 더하려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일본 현지생산의 주요 걸림돌인 높은 인건비 문제도 중국 인건비가 워낙 빠르게 오르고 있어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 또 최근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등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의 필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해외기업 유치를 위해 2013년부터 법인세를 꾸준히 인하해 일본 현지생산의 매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신문은 “중국 기업을 전략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면 일본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중국 기업의 진출을 촉진했듯이 (일본 정부도) 자유무역 추진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신문은 중국 기업으로의 기술 유출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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