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슘페터의 복수





‘창조적 파괴’. 정보통신기술(ICT)시대를 맞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다. 알리바바와 샤오미, 텐센트 등 요즘 잘 나가는 중국기업의 성장비결이 바로 ‘창조적 파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고,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마다 경영혁신의 일성으로 이를 강조한다. 세계 최대 가전쇼 CES 2015에서 존 체임버스 시스코 회장의 기조연설 주제도 ‘빠른 혁신: 파괴하느냐, 파괴당하느냐’였다. 그는 특히 10년 내 현존하는 기업 60% 퇴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가 절체절명의 과제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곱씹어봐야 할 게 있다. 창조적 파괴에 대한 오해다.

지난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도 이 말은 국내 기업과 증시에 유행했다. 닷컴 버블때의 얘기다.

증권 투자자들은 닷컴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믿었다. 회사이름 끝자리에 ‘테크(tec)’나 ‘닷컴(.com)’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투자자들은 열광했고 기업들도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기업의 냄새가 나게 했다. 그래야만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금의 땅이라고 믿었던 닷컴 ‘엘도라도’가 한 순간에 ‘킬링필드’로 바뀔 지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이는 창조적 파괴가 신경제에만 적용되고 제조업으로 대변되는 구경제산업은 모두 망할 것이란 착각에 빠지는 오류에서 촉발됐다.

당시 신경제 학자들은 “신기술은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며 구기술의 가치를 잠식한다”고 강조한 슘페터의 이론을 단순히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했다. 파괴는 오로지 구경제에만 국한된 것으로 과대 포장했다.

하지만 신경제 역시 새로운 기술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기존 신기술을 파괴하고, 구경제 산업도 신기술을 채용하면서 신경제를 파괴하고 있다. ‘슘페더의 복수’란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한때 세계 최대의 핸드폰 업체였던 핀란드의 노키아가 한순간에 망하고 일본 후지필름이 제약과 화장품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노키아 사례는 차치하더라도 후지필름의 사례는 연구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디지털카메라에 밀려 뒷방신세로 전락했던 후지필름은 감기치료제로 승인받은 ‘아비간’이 에볼라 치료제로 효력을 발휘하면서 매출 역시 급증하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뻔한 구경제 산업인 필름사업에서 과감하게 사업을 다각화해 재도약의 기회를 만들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철저히 기존에 쌓인 기술을 바탕으로 신사업을 펼쳤다는 것이다.

후지필름은 필름기술과 중첩된 노화방지 화장품 분야에 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약사를 인수, 제약분야에서도 발전기반을 마련했다. 현재 제약, 화장품, 의료장비 등 헬스케어 부문은 2조5,000억 엔에 달하는 매출의 40%를 차지한다. 복사기와 사무용품 부문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구경제에서도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성공사례고, 기존 기술을 활용했다는 측면에서 우리 제조업체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다.

창조적 파괴는 결코 IT와 인터넷 등으로 대변되는 신경제로의 진출만 의미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 신경제는 더 활발한 파괴에 의해 기존 기술이 도태되게 된다.

최근 기업마다 대체에너지, 환경, 로봇 테마 등을 신사업으로 잇따라 선정하고 있지만 위험천만한 일이다. 블루오션으로 보이는 것이 어느 순간 레드오션으로 바뀔지 가늠하기 어렵다.

후지필름의 사례처럼 낡은 것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노하우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면서 기존 사업비중을 줄여나가는 게 진정한 창조적 파괴일 수 있다. 우리는 제조업이 여전히 많고 상당 기술이 중국 등의 추격으로 인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시간이 많지 않다고 푸념할 필요도 없다. 중국의 추격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다시 그 격차를 벌일 수 있는 시간은 남아있다. 상당수 제조업 기술은 여전히 몇 년 정도씩 중국에 앞서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조해야만 우리경제도 다시 도약할 수 있다. 구경제의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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