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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백승철, “‘백년동안의 고독’...연극쟁이들의 삶과 가장 가까워”

“연극인들과 술을 먹으면서 떠올린 작품이 ‘백년동안의 고독’입니다. 까뮈나 푸시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면서, 저들은 자신들이 환상적으로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랑 대화를 하고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진짜로 ‘자아’가 내 앞에 나타나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고, ‘나의 길’을 말해준다면?....이란 생각에 써 내려갔죠.”



극단 해반드르의 연극 ‘백년동안의 고독’이 오는 17일 대학로 스타시티 후암스테이지 2관 무대에 오른다. 20세기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학가 중의 한 명으로 존경받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원작을 기반으로 백승철 작가가 새롭게 창작한 연극이다.

배우 백승철 /사진=지수진 기자




꿈을 향한 외로운 항해 속에서 깊어만 가는 ‘인간의 고독‘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던 우르술라 성인과 실제 우르술라 수녀 사이에서 마르케스를 찾아가는 한 연출가와 배우의 창작과정을 담았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모티브로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연극인들의 치열한 아픔과 시간과 고독의 자폐적 순환이 몰입감을 선사 할 예정.

백승철은 1991년, 극단 미래가 명동의 엘칸토 소극장 무대에 올린 연극 ‘사랑청문회’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그 이후 연극 ‘대권무림’, ‘황사영 묵시록’, ‘레드’, ‘아리랑’,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삼류배우’, ‘주인공’, ‘화장’, ‘미운남자’,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 ‘밥’, ‘최고의 사랑’등에 출연했다. 연극 배우 경력만 26년차이다.

2000년 이후에는 영화로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영화 종려나무숲, 예의 없는 것들, 황해, 기화 ‘곡성’ ‘군함도’ 등에 출연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교내 백일장에서도 상을 받고, 친구들 연애편지 대필을 해주던 백승철은 현재 배우 겸 작가, 연출가이다. 오랜 시간 묵혀둔 희곡이자, 가슴에 답답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고민상담소-행복서비스센터’가 2009년 무대화 됐고, 두 번째 작품인 ‘덕배’(‘백년동안의 고독’ 초연시 제목)는 2014년 극단 혜화 최일화 스튜디오 무대에 올랐다.

3년만에 ‘덕배’를 새롭게 무대에 올리는 백승철 작가 겸 배우를 만났다.“ 허상을 꿈꾸기 보단 값어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연극 이야기를 공개한다.

◇ 2014년 올린 ‘덕배’가 ‘백년동안의 고독’ 한국판이라고 할 정도로 마술적 리얼리즘이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이번엔 마르케스의 원작 제목을 그대로 내세웠다.

▶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작품 속에 많이 녹였어요. 솔직히 그 이야기인데, ‘덕배’ 초연에서 각색하다보니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됐어요. 등장인물도 바뀌고 거의 새로운 작품이 된거죠. 마르케스가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기자생활을 한 분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배우들의 관심사는 그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이었다는 점 아닐까요.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백년 동안의 고독’, ‘예고된 죽음의 기록’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등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이 많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작가입니다.

연극 ‘백년 동안의 고독’ 포스터


◇ 연극계 쪽에선 셰익스피어의 ‘햄릿’, 체홉의 ‘갈매기’가 주로 공연되고 있다. 특별히 마르케스의 작품을 들고 나온 이유가 있나.

▶ 영국의 셰익스피어, 러시아의 체홉이랑 막심 고리키, 미국의 유진오닐. 독일의 프란츠 카프카 작가의 작품은 계속해서 명작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 극단에서 이렇게 올리고, 저 극단에서 저렇게 올리고 있어요. 재해석해서 올리는 ‘햄릿‘ ’체홉‘이라고 각광 받고 있어요.



‘햄릿’ ‘갈매기’ 하면 주류 작품이란 인식하에 배우들도 그 작품만 따라해요. ‘갈매기’에 출연한 배우는 자랑스러운 배우이고, 새로 써서 검증 안 된 창작 연극에 출연하면 부끄러워해요 연극쟁이가 도전하지 않고, 쥐뿔도 모르면서 안주하려고 하는 태도에 반감이 들었어요.

◇ 그런 면에서 연극인 백승철의 도전정신을 높게 살 만하다.

▶ 제가 유명 작가도 아니고, 연출도 아니고 배우도 아닙니다. 연극 무대가 너무 정체돼 있다는 생각에 새롭게 도전한 것일 뿐 대단한 건 아닙니다. 다만 대학로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은 셰익스피어에 동화돼서 나온 사람 아니면 체홉에 동화돼서 나온 사람이어야 하나요? 아니잖아요. 누구나 철학이 있고, 상승시킨 문학이 있으니까 예술을 하잖아요. 발전시켜서 하려고 하지 않고 남들 하는 것 따라하려고만 하는 자세가 바뀌었으면 해요.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도 저희 작품에 조금 썼는데, 카프카는 ’변신‘에 등장하는 눈을 뜨고 나니 흉측한 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를 풍뎅이로 생각해서 흉측하게 그렸어요. 그런데 그 당시 서양에선 자기네들이 흉측하게 생각하는 바퀴벌레로 해석해서 올렸어요. 우리네 역시 서양의 해석 그대로 바퀴벌레로 올리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작품은 실험 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도전을 겁내면 연극계는 발전이 없어요. 그러면서 잘난 체는 다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 별 볼일 없는 한 인물의 홀로 외로운 투쟁, 인간은 누구나 고독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연극이다. 백 작가가 보는 연극인들의 자화상을 담았다.

▶ 마르케스가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장르를 표방하듯, 저희 연극은 마술적 리얼리즘과 연극배우들이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있지 않나. 그걸 말하고 있어요. 연극쟁이의 삶을 보면, 본인의 실제 삶이 허구이고 (허상을)실체인 냥 좇아가는 삶을 살고 있어요. 누구나 한방을 꿈꾸고 살고 있는거죠. 종합 예술인이라고 명명하며 살고 있는데, 집에 가면 바퀴벌레랑 싸워야 하는 게 현실이죠.

이외수의 시를 보면, ‘한때 나는 어두컴컴한 창녀의 방에서 갖은 더러운 것과 친하게 살았다’란 구절이 나와요. 그 구절과 딱 맞는 게 아직도 연극배우의 삶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꾸 허상만 꿈꾸는 것 같아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게, ‘백년동안의 고독’에 담겨 있습니다.

배우 백승철 /사진=지수진 기자


◇ 26년간 연극 무대에 몸 담아왔다. 백승철 배우 역시 허상을 꿈꾸진 않더라도,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나.

▶ 이왕 하는 거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무명’이란 게 값어치가 안 팔린다는 뜻이잖아요. 제가 하는 일이 값어치 있게 팔리고 싶다는 마음 그건 당연한 거라 생각해요. 사람이 힘들어지면 옆에서 ‘힘내. 파이팅’ 이란 소리는 하지만 정작 그 사람 가까이 있고 싶어 하진 않아요. 내가 살만해지면 멀리서 ‘힘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은근히 가까이 와 있어요. 내가 뭐가 있어야 사람이 있어요. 그게 사람이고, 이 사회의 이치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심리를 탓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그 만큼 값어치 있는 사람이 되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이 50이 다 되다보니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대형 면허 따서 버스 운전을 해볼까도 생각해 봤는데, 기존 유 경력자들이 저보다 잘 하는 분들이 많아요. 사람이 하던 걸 하고 살아야죠. 이번 작업은 강덕중, 강성철, 장비희, 오두원 배우들은 물론 유경민 연출 등 스태프까지 노페이를 선언하고 만들고 있어요. 우스갯소리로 모든 사람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연극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희끼리 의미 있는 작품 만들어보고 싶어 한 마음으로 뭉쳤어요. 혹여나 작품이 쓰레기처럼 나올 수도 있어요. 저희의 마음 자체는 잘못 된 거 아니니 부끄럽진 않아요. 아니 나름 재미있는 연극이 나올 겁니다. 좀 많이 보러 와 주세요. 하하.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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