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4월 1일 발생한 하나의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새 시대의 서막을 열게 했다. 이날 부산역에서 오전 5시 5분 출발한 열차가 2시간49분 만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고속철도 시대를 맞은 것이다.
이런 ‘속도혁명’은 우리의 많은 것을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 시속 300㎞로 내달리는 고속열차 덕에 전국은 반나절 생활권에 들어갔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장거리 출퇴근이 가능해졌고, 지방과 서울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며 시민들의 생활 반경을 넓혔다. 이렇게 사람의 이동 동선을 바꾸자 국내 지형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철길이 뚫리는 곳 따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에 맞는 다양한 시설이 지어지는 개발이 이뤄졌다. 또 일부 도시에선 이런 변화를 시작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경기도 광명시다. 서울의 위성도시에 불과했던 이 작은 도시는 고속철도가 지나는 광명역사의 건립을 시작으로 또 다른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런 발전의 그 중심에는 ‘광명역 파크자이’가 있다.
KTX역 들어섰지만 사업성 의문에 모두가 개발 주저
‘교통 요지’ 내다 본 양계호 회장 뚝심으로 성공 궤도
인접지역 묶은 ‘신시가지형’ 역세권 개발 초석 다져
◇‘광명역 파크자이’ 광명역세권 개발에 불을 지피다
‘광명역 파크자이’는 경기 광명시 일직동(광명역 동편)에 위치한 주상복합 단지다. 아파트 875가구와 오피스텔 336실로 조성돼 올 8월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에서 ‘핫’한 지역으로 꼽히는 광명역세권에 자리 잡은 신축 주상복합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은 높은 곳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장 가치가 높다는 점만이 이곳의 전부는 아니다. 보다 중요한 건 ‘광명역 일대의 지도를 바꾼’ 프로젝트가 ‘광명역 파크자이’라는 점이다. 부동산 개발업계에서는 허허벌판에 불과했던 광명역세권에 개발의 불을 지폈던 프로젝트가 ‘광명역 파크자이’라고 평가한다.
광명시는 2004년 KTX 광명역 준공과 함께 인근 역세권 개발을 위해 택지개발사업을 진행한다. 행정구역상 광명시 일직동과 소하동, 안양시 석수동과 박달동을 아우르는 곳을 주거공간과 상업 업무공간으로 개발하고, 인천국제공항 등과 연결하는 교통망을 구축해 서울 위성도시에 불과한 광명시를 수도권 서남부를 주도하는 곳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대로 사업은 진행되진 않았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일대 개발은 지지부진해 광명역은 ‘유령역’으로 불릴 정도였다. 이에 사업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수많은 자금을 쏟아 부으며 주상복합 단지를 짓겠다는 개발업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광명역 파크자이’의 사업을 맡은 화이트코리아의 신정 부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때만 해도 광명역 주변은 허허벌판 같은 곳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저와 화이트코리아 직원들 대부분도 여기(광명역세권)에 주상복합 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에 반대했었으니까요. 주상복합은 사람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진행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택지에서 주상복합을 짓겠다니, 우리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양계호 화이트코리아 회장의 뚝심과 강력한 설득 끝에 직원들도 움직이게 됐다고 한다. 화이트코리아는 2014년 2월 2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주상복합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상황의 반전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화이트코리아의 움직임이 일대 개발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간 사업 진행에 주춤하던 대형 건설사 등도 때맞춰 광명역세권의 주상복합 개발에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광명역세권에는 개발의 붐이 일었고, 관련 업계에서 이 지역을 유망한 곳으로 점찍기 시작했다. 지역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 속에서 2015년 ‘광명역 파크자이’는 분양됐고, 당시 최고 33대 1의 1순위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후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 덕에 화이트코리아는 광명역세권 사업을 추가로 진행한다. ‘자이’의 브랜드를 내건 주상복합 단지(광명역 자이타워 2차)와 지식산업센터(광명역 자이타워)를 ‘광명역 파크자이’ 옆에 연달아 세운 것이다. 이에 오는 2019년 8월 ‘광명역 자이타워’에 모든 기업 입주가 끝나게 되면 이 일대는 이른바 ‘자이타운’이 완성된다. 황무지에 불과했던 곳에서 브랜드 마을이 생기는 셈이다. 2020년께 인근(광명역 동편) 주상복합 단지들의 개발이 끝나면 광명역사 주변은 또 다른 하나의 도시로 탄생한다.
◇신시가지형 역세권 개발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 광명역세권 그리고 광명역 파크자이
‘광명역 파크자이’와 일대의 ‘자이타운’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역세권 개발이라는 새로운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에 한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국내 역세권 개발은 역사 내부의 역무 시설을 개발하고 리모델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민간 투자자를 유치해 역사를 상업기능 등이 들어선 복합시설로 구성하는 단계를 거쳐 현재 인접지역을 묶어 하나의 도시권역으로 발전시키는 이른바 ‘신시가지형’ 모델이 진행 중이다. 이 마지막 단계인 ‘신시가지형’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광명역세권 사업이다. 그리고 ‘광명역 파크자이’가 그 작업의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프로젝트인 것이다.
최근 부동산 개발업계는 기존 도시 내 용지가 부족하자 역세권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역세권이 상대적으로 개발밀도가 덜하기 때문. 철도부지 상부에 주거공간을 조성하겠다는 등의 발상은 그래서 나온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기존 시가지의 재편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 또한 역세권 개발에 나서는 까닭이다. 이에 따라 개발이 진행된 역세권은 이제 교통중심지를 넘어 지역 내 생활중심권이자 주민 커뮤니티를 증진시키는 지역 발전의 거점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광명역의 경우 국내 교통의 요지가 될 것이라 관측이 많아 관심은 더 높다. 고속철도는 미래 친환경 교통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광명역이 경부축과 호남축의 접점지역인 까닭에서다. 양 회장이 직원들의 반대에도 텅 빈 공간이었던 광명역세권에 주목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 부사장은 “광명역은 KTX 경부선과 호남선 모두가 지나갈 뿐 아니라 인천공항과도 연계되는 교통의 요지”라면서 “광명역에서 시작하는 고속철도를 유라시아 철도와 연계하려는 통일역사 계획이 완성되면 일대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디벨로퍼의 당초 기대와 달리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통일역사를 기반으로 한 광명역의 성장세가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을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곳에서 주상복합 사업을 성공궤도에 올려놓고 일대의 상전벽해를 이뤄냈던 탓에, 그들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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