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대학과 기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첫 신호탄입니다. 한국 기업이 앞으로도 글로벌 경쟁력을 굳건하게 이어가려면 체계적인 산학협력을 통한 성장동력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칼 코스터 매사추세츠공대(MIT) 산학협력단(ILP) 사무총장은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나 “한국은 우수한 인력과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제 규모와 위상에 비해 산학협력의 성과가 좀처럼 두드러지지 않는 대표적인 국가”라며 “학교와 협력하지 않고 기업이 독자적으로 연구개발에 매달려서는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결과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MIT ILP는 지난 1948년부터 운영돼온 산학협력 전담조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대로 꼽히는 MIT의 우수한 인력에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연계해 지속가능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다. 기업은 연구개발 역량을 조기에 확보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대학은 일자리 창출과 취업률 증대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주최한 글로벌 바이오 컨퍼런스 ‘2017 코리아바이오플러스’ 행사 참석을 위해 방한한 코스터 총장은 “MIT는 그간 8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그보다 더 두드러진 성과는 70여년 역사의 MIT 산학협력 프로그램 출신 창업가들”이라며 “지난해 기준으로 이들이 창업한 기업의 매출은 1조6,000억달러( 약 1,800조원)이고 이를 국가별 국내총생산(GDP)으로 환산하면 캐나다와 러시아 사이인 전 세계 10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MIP ILP에는 전 세계 241개 기업이 회원사로 활동한다. 비공개 기업까지 합치면 300개가 넘는다. 대다수가 익히 알려진 글로벌 기업이고 중국과 일본 기업도 각각 30개가 넘는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두산중공업 4개에 불과하다.
코스터 총장은 한국 기업의 ‘조급증’이 산학협력의 성과를 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각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해당 지역 기업의 가입을 주도하고 있고 일본은 글로벌 제약사로 부상한 다케다제약이 일찌감치 MIT ILP에 참여한 뒤 연구개발센터를 아예 MIT가 위치한 보스턴으로 옮기기도 했다”며 “산학협력은 단기간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구개발 역량을 축적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우수한 인력과 뛰어난 기술력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올라섰지만 남의 뒤를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는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산학협력을 통해 우수한 인력이 기업에 수혈돼 기업이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자본을 다시 인력 육성에 투자하는 선순환구조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 모델”이라고 조언했다.
코스터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학 교육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딥러닝 등이 미래 산업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지금 대학 교육은 이론과 실무를 넘어 어떻게 실용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커리큘럼을 수정해야 한다”며 “MIT ILP는 매년 20회 이상 주제별 컨퍼런스를 열고 수시로 기업이 어떤 인재를 원하고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철저하게 연구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의 바이오산업 경쟁력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코스터 총장은 “바이오산업이야말로 대학과 기업의 개방형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기반으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며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원으로 부상한 바이오기업들이 단기간의 성과에 매몰되지 말고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을 이어간다면 글로벌 수준의 신약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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