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천 년의 맛을 연다 - 영주 선비밥상’ 편이 전파를 탄다.
먹을거리로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치유했던 영주의 선비들. 소백산이 품은 최고의 산물들이 선비정신과 만나다. 기나긴 겨울을 이기는 지혜가 담긴 보살핌과 배려의 한 상을 찾아가본다.
▲ 언제나 꼿꼿했던 달성서씨 문중, 손님맞이 음식 - 사천리 달성서씨 새내마을
마을 곳곳에 500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천리 새내마을.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고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돈암 서한정’ 선생의 후손들이 자리 잡은 선비 마을인 동시에, 아직까지도 마을 곳곳에 서원이나 정자들이 남아있는 살아있는 역사촌이기도 하다. 50여 년 전, 이 마을 남자와 결혼한 점기씨는 하루하루가 음식과의 사투였다. 사천리 마지막 선비라 불리신 시아버님은 다방면으로 학식이 깊어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다. “우리는 먹지 못해도 손님 대접은 허투루 하면 안 된다”고 하셨던 집안의 가르침 때문에 늘 손님 접대 음식을 준비해 둬야 했었다는데.
가난한 선비의 집은 늘 먹을 것이 부족했지만, 손님 접대를 위해 만들어낸 음식들은 그래서 더 정성이 가득하다. 방망이로 명태를 두드려서 보풀을 내고 양념을 해 만든 명태보푸리는 음식을 푸짐하게 보이게 하고, 이가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의 음식이고, 시제 때 남은 생선을 소금이 담긴 장독에 넣어 보관했다가 끓인 방어찌개는 맛과 영양, 둘 다 잡은 손님들만의 특식이란다. 화려함보다 정성이 돋보이는 이 집안의 음식은 벼슬보다 학문을 중시했던 달성서씨 집안의 정신을 그대로 닮았다. 소박하고 간소하지만 배려가 돋보이는 새내마을의 밥상을 따라가 본다.
▲ 인삼의 고장, 선비 주세붕이 사랑한 땅 ? 풍기읍 금계리의 새해 밥상
소백산 남쪽 신령한 기운이 모인 곳에 자리 잡은 금계리. 선비 주세붕 선생이 인삼 씨앗을 받아와 최초로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 이곳 풍기 금계리이다. 적당한 햇빛과 그늘. 최적의 조건을 가진 환경적 요인으로 그 어느 곳보다 인삼이 잘 된다는 금계리는 정감록이 뽑은 십승지 중에 일승지이기도 하다. 정감록을 보고 북한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마을답게 음식문화에도 그 흔적이 남았다. 새해가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둘러앉아 만든다는 만두도 이북 음식의 영향을 받아 보통 만두보다 3배는 크다. 이렇게 만두 속을 꽉꽉 채워 크게 만들어야 제대로 한 상을 차린 느낌을 받는단다.
그래도 겨울 보양에 가장 좋은 음식은 따로 있다. 인삼의 마을답게 좋은 땅에서 기른 6년산 인삼과 영주 한우를 넣고 6시간 이상 푹 곤 삼우탕이 그것이다. 소고기와 인삼을 사골 고듯이 오래 끓이면 그 영양분이 국물에 우러나와 삼우탕 한 그릇이면 아픈 곳 없이 겨울을 날 수 있단다. 금계리의 음식은 어떤 계절이라도 맛있지만, 그 중 농사가 다 끝나고 다음 해를 준비하며 먹는 겨울 음식이 최고라고 말하는 금계리 사람들! 금계리의 역사가 담겨있는 새해 밥상을 찾아가 본다.
▲ 선비촌의 새해맞이, 찰밥 먹는 날!? 영주 선비촌 용마름 올리기
옛 선비들의 집을 재현해놓은 선비촌은 매년 겨울이면 새해를 준비하기 위해 담벼락이며 지붕이며 오래 묵은 짚을 걷어내고 새 옷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 묵은 짚을 걷어내고 새 초가를 얹을 때 가장 힘들고 중요한 작업은 바로 용마름 작업! 용마름은 초가지붕 중앙에 올려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게 엮는 것도 올리는 것도 전문가가 아니면 하기 힘들단다. 올해도 선비촌 용마름을 혼자 450m 이상 엮었다는 박용학씨는 경력 40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이다. 용학씨는 초가지붕 작업을 하는 날 중에서도 새 지붕을 얹는 날이 가장 기다려진다고 하는데. 그건 바로 이날에만 먹을 수 있는 찰밥과 콩가루냉이국 때문이다.
새 초가를 얹는 날이면 지붕이 착착 잘 붙으라는 의미로 찰밥을 먹는다는 선비촌 사람들! 그래서 마을 아주머니들은 올해도 무사히 작업을 마치기를 빌며 팔을 걷고 나섰다. 용마름 얹는 날 절대 빼놓을 수 없다는 쫀득한 찰밥부터 콩가루냉이국, 그에 어울리는 각종 묵나물로 담백하게 무친 묵나물무침, 그리고 술안주로 최고라는 태평초까지 준비한다.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라는 태평초는 메밀묵과 김치를 이용해 매콤하게 끓여내는데~ 한 해 일을 마치고 태평할 시기에 먹고, 또 앞으로도 태평하라는 의미에서 태평초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선비촌 사람들의 겨울나기, 새해 밥상을 따라간다.
▲ 한학을 하셨던 아버지, 추억을 부르는 맛, 부석태 청국장 - 부석면 우곡리 부석태 밥상
영주의 옛 선비들에게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로 유명했다는 부석면 우곡리. 우곡리는 영주에서도 부석태 콩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리태나 동부 콩보다 알이 굵고 큰 부석태는 이름까지도 부석면에서 따온 영주의 재래 콩이다. 김서임씨는 우곡리에서 이 재래 콩 농사를 지은 지 30년이 넘은 베테랑 농사꾼이다. 일찍이 가장이 된 서임씨는 한학을 하시던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자식들을 책임지기 위해 빈 땅만 보이면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 콩을 선택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경작했단다.
오늘은 친구들과 매해 겨울이면 만들던 청국장을 띄우기로 했는데~ 부석태 콩은 어떤 콩보다 진이 많은 청국장을 만들 수 있단다. 잘 띄워진 청국장에 말린 호박고지를 넣고 찌개를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라는데, 이 맛은 친정아버지께서 특히 즐기시던 맛이었다. 이 호박고지 청국장만 보면 농사일이 바빠 제대로 모시지 못했던 아버지 생각이 나 죄송스럽기만 하단다. 그래서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호박고지를 넣은 청국장을 끓여 먹고는 한다. 청국장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부르는 추억의 맛이라면, 메줏가루를 넣은 생선 젓갈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에게 배운 이 젓갈은 특이하게도 생선에 메줏가루를 넣어 만드는데, 천연 조미료이다. 나이가 들수록 콩만 보면 더욱 부모님 생각이 난다는 서임씨. 추억과 향수로 가득한 서임씨의 부석태 콩 밥상을 찾아간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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