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는 아빠랑 둘이서만 찍는 거 정말 안 좋아해요. 하도 오래 붙어 다녔으니까.”
클로이 김(18)의 아버지 김종진(61)씨는 딸이 금메달을 딴 지난 13일 서울경제신문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부녀가 다정한 포즈로 사진 한 장 찍는 게 어떠냐”는 말에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클로이 김을 보자마자 “사진 한 장 어때?”라고 권했다. 그렇게 찍은 부녀의 사진 포즈는 더 없이 다정했다. 김씨는 영락없는 딸바보였다.
‘스노보드 천재’에서 여왕이 된 하프파이프 금메달리스트 클로이 김의 차원이 다른 경기력과 톡톡 튀는 언행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가운데 그의 아버지 김씨도 화제가 되고 있다. 평창올림픽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기자와 마주한 그는 “클로이는 아빠가 희생했다고 언론에 얘기하지만 그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장시간 운전해서 다닌 것은 맞는데 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데 그걸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부녀는 스위스 스노보드 유학 시절 훈련장으로 가는 산악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새벽4시에 이동해 밤11시에 돌아오는 생활을 2년간 이어갔다. 미국에서는 어떤 훈련장에 가려면 10시간 넘게 달려야 했다. 이런 사연은 널리 알려져 이달 초 슈퍼볼 광고에 활용되기도 했다. 김씨는 “광고 출연료도 470달러 받았다”며 웃어 보였다.
소셜미디어 스타이기도 한 클로이 김은 아이스크림·추로스·피자 등 음식 얘기를 유독 많이 적는다. 김씨는 “딸은 아기 때부터 먹성이 대단했다. 또래의 4배씩 먹어치워서 의사에게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물으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클로이 김은 한국말도 제법 잘한다. 김씨는 “한국인 핏줄이니 당연히 가르친 것도 있지만 여러 언어를 할수록 사고가 넓어질 거라는 생각에서 배우게 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에 머물던 시절에는 프랑스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최근에 하버드대 면접을 본 클로이 김은 가을이면 대학에 진학한다. 김씨는 “대학생 되면 집에서 멀리 떨어져 독립하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집이 서부(캘리포니아주)니까 학교는 동부로 가려는 것 같다”며 “스노보드도 물론 좋지만 대학생이 되면 보드를 잠시 쉬더라도 학교 공부하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클로이 김은 이번 올림픽과 같은 코스에서 열렸던 1년 전 테스트이벤트에서 4위를 했다. 감기몸살로 응급실까지 다녀오는 등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김씨는 “딸이 스노보드를 시작한 후 3위 안에 못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돌아보며 “그래도 1년 만에 큰 무대에서 실수 없이 해내니 대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딸이 올림픽 금메달로 슈퍼스타가 됐지만 김씨는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미국에서 활약할 때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도 많았어요. 올림픽 금메달로 영웅이 된 것 같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들뜨지 않고 그저 하던 대로 묵묵히 해나가면 될 것 같아요.” 14일 외할머니 등 가족들과 식사하며 조촐하게 올림픽 금메달을 자축한 클로이 김은 곧 서울로 넘어가 쇼핑을 즐길 계획이다. /글·사진(평창)=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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