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총성울린 무역전쟁 어디로 가나 (상)]룰·협상도 없는 도미노 보호무역 초래...되레 中위상만 높아질듯

시험대 오른 WTO 체제

트럼프 통상에 안보 내세워 나라마다 무역장벽 강화 불보듯

무용론 직면한 WTO "美 발표 심각하게 생각" 이례적 경고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자신의 재선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회를 마친 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백악관에 도착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역법 232조’를 내세워 전 세계를 무역전쟁의 소용돌이로 끌고 들어감에 따라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 구축해온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 국제무역의 룰이나 협의 과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미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고강도 제재로 발을 내디디면서 보호무역의 흐름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뒤덮을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국제사회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이번 조치가 과거에 반복돼온 국가 간 통상분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전면전으로 비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 같은 해석이 나온 것은 이번 조치가 주요 수출국을 망라한 포괄성에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의 민감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를 내세운 일방주의로 통상질서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국가안보 저해 위협’을 근거로 철강 수입을 제재할 방침이다. WTO 출범의 근간이 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안보를 예외사항으로 인정해 무역규제를 취할 수 있게 허용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예외조항을 일반화해 사용하면서 사실상 WTO 체제를 무력화하고 무역질서의 룰을 허물고 있다. 중국은 물론 한국·일본·캐나다·유럽연합(EU) 등 동맹국까지 겨냥한 이번 조치는 사실상 종전의 국제통상질서를 와해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WTO가 안보 문제를 무역제재의 근거로 인정하는 이상 대미 철강수출국들의 WTO 제소조차 만만치 않아 각국이 독자적 보복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것 중 하나가 미국처럼 안보를 내세우는 방법이다. 게리 라이스 국제통화기금(IMF) 대변인이 2일 “이 조치로 다른 나라들도 광범위한 수입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 안보논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강조한 이유다. 세계 각국이 안보를 앞세워 무역장벽을 세우면 WTO는 설 자리를 잃게 되고 무역보복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과거 크고 작은 통상분쟁을 해결하는 큰 틀이 됐던 WTO 체제가 흔들리면서 세계 통상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2002년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수입 철강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해 무역전쟁을 촉발했을 당시에는 국내의 반발 여론과 WTO의 ‘부당’ 판정으로 해당 조치가 2년 만에 철회됐지만 질서가 무너진 다음에는 이러한 해결방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무역전쟁의 먹구름이 짙어지자 WTO는 2일 개별 회원국의 관세정책을 논평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미국의 발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경고했지만, 이후에도 이어진 트럼프의 보복관세 언급은 WTO가 사실상 무력해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철강 등에 대한 이번 제재를 사실상 조사시작 단계에서 확정해놓고 상대국들과의 협의는 시늉만 하는 모습을 보여 후유증이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1980년대 중반 달러화 강세 속에 미국 무역적자가 급증하자 일본과 독일을 압박한 끝에 ‘플라자합의’로 엔화와 마르크화의 대폭 절상을 끌어낸 미국의 협상술이 이번에는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에 무리한 통상조치를 밀어붙인 것은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특검 수사 속에 불안한 정치적 입지를 보강하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 나아가 2020년 재선 승리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제 막 시작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공세는 앞으로 더욱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이 유턴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이 그 빈자리를 메우며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4일 중국의 자유무역지수가 1995년 20점에서 올해 73.2점으로 급등하며 미국의 보호주의 속에서 글로벌 통상질서를 주도해나갈 발판을 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