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본을 읽었을 때 느꼈던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해드리고 싶어서 더욱 열심히 했어요.”
‘화유기’는 22년차 배우 이세영의 모든 것이 다 녹아 있는 드라마이다. 이세영은 극 초반 걸그룹 연습생 출신 정세라를 연기, 좀비 모습으로 강렬하게 등장한다. 이어 삼장 진선미(오연서 분)의 피로 인해 깨어난 환혼시부터 명랑한 좀비소녀 진부자, 매혹적인 신녀 아사녀 1인 3역 캐릭터를 연기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프레인 TPC 사옥에서 진행된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극본 홍정은 홍미란 / 연출 박홍균 김병수 김정현)종영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이세영은 막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열정에 넘쳐 있었다. 그만큼 ‘화유기’를 누구보다 애정 했고, ‘아사녀’라는 큰 반전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음을 알게 했다. 특히 진부자가 아사녀가 되는 반전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고 말 할 정도.
“처음에 좀비 역할을 했을 땐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어눌하게 말하는 톤으로 해서 변화를 줬다. 나중에 ‘아사녀’라는 큰 반전이 있기 때문에 극대화를 위해 더욱 노력한 부분이다. 시청자들에게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연구를 많이 했다.”
1200년 동안 원한을 품고 있었던 ‘악의 최종 보스’ 아사녀란 인물을 소화하는 과정은 이세영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사녀가 소멸되던 마지막 장면에서는 ‘컷’ 소리를 들은 이후에도 한참 동안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120% 몰입해서 아사녀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저팔계(이홍기)에게 ‘좋아했어요’라는 부자의 마지막 말을 전달해 준 아사녀가 그렇게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게 너무 슬퍼서 대본을 보면서 부터 엄청 울었다. 홍기 오빠가 혼자 소멸 장면을 촬영 중일 때도 안 보이는 곳에서 울고 있었을 정도이다.”
이세영은 SBS ‘형제의 강’(1996)으로 데뷔한 이후 MBC ‘대왕의 길’(1998), ‘온달왕자들’(2000) 등을 거쳤고 MBC ‘내 사랑 팥쥐’(2002)등에 출연한 이세영은 잘 자란 아역 배우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최근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시작으로 ‘최고의 한방’, ‘화유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이세영은 연기에 대한 열정이 더욱 가득 차 올랐음을 느끼게 했다. “전 아직 갈 길이 멀고 아직 갈 길이 남아 있어서 되게 재미있을 것 같다”며 눈빛을 빛내기도 했다.
“제가 잘 몰랐던 걸 알게 되는 과정이랄까. ‘화유기’는 특별히 더 많은 걸 느낀 시간이었고, 더 많은 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연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도 특별했다. 음, ‘화유기’는 그만큼 ‘빛’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먼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떻게 지루해지겠어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게 많아서 항상 어렵지만 재미있다. 아는 만큼 더 보인다고 했다. 조금 아니까 예전보다 더 재미있고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연기론적으로도 그렇고, 마인드 컨트롤적으로도 그렇고 매번 불안하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있다.”
특히. ‘여선생 VS 여제자’ (2004) 이후 13년 만에 다시 만난 배우 차승원은 이세영에게 많은 깨달음을 안겼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도 “핵 멋있다”를 연발하며, 연예인을 눈 앞에서 본 팬의 심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간 이세영은 “분위기가 남달라 진짜 마왕님 같았다”고 털어놨다.
“차승원 선배님은 13년 전에 보고 ‘화유기’로 다시 만났는데, ‘마왕님 여전히 멋있으십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정말 마왕님이시다. 선배님은 포스도 인품도 연기도 모두 훌륭하신 분이다. 마왕님 앞에서 ‘네 좀비입니다’ 라고 말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라고 대사를 말하면서 친한 척 하고 그랬다. 나중에 내 캐릭터를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까 여쭤보기도 했는데, 너무 애정을 가지고 알려주셨다. 진짜 모든 순간 순간들이 너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정말 돈으로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이었으니까. 엄청 비싼 과외인거잖아요. ”
그 중에서도 시청자 입장에서 눈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직접 후배 앞에서 시범 연기를 보여준 차승원 배우의 일화는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세영이 연기에 임하는 태도 자체를 돌아보게 한 일화일 정도.
그는 “제가 ‘슛’이 안 들어갔을 때 스태프 앞에서 연기 연습을 보여 주는 걸 부끄러워했다” 며 “차승원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감히 이런 걸 부끄러워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더라”고 전했다.
“선배가 저를 위해서 직접 연기를 하는 걸 보여주셨다. 제가 느낄 수 있게 직접 보여주신거다. 나를 위해서 승원 선배님이 연기를 해? 이 사실 자체도 감동이었는데, 나에게 이걸 가르쳐 주겠다고 몰입해서 연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반성했다. ‘난 왜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걸 부끄러워했지?’ 란 생각과 함께 ‘보여주는 게 아닌 못하는 게 창피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와 진짜 멋있더라’ 연기에 임하는 태도랑 코믹 센스가 좋으셔서 촬영장에서 선배님 때문에 매번 ‘빵빵’ 터졌다.”
이세영은 인터뷰 현장에서, 자신의 얼굴이 프린팅된 명함과 다이어리를 들고 취재진을 맞이했다. 인터뷰 타임에 다이어리에 하나 하나 질문을 적는 습관은 ‘월계수 양복점’ 종영 인터뷰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많은 기자분들과 인터뷰를 해서 사실 정신이 없기도 했다. 또 방송을 꼼꼼히 봐주신 분들이랑 인터뷰를 하는거라 재미있고 감사해서 나 역시 인터뷰에 더 신경을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 저도 인터뷰 한 기자분들을 한명 한명 기억 하고 싶었다. 인터뷰 하는 시간은 늘 감사하다. 물론 어렵기도 하지만 ‘호호’ ”
어느덧 22년 차 배우가 된 이세영. 그에게 가장 어려운 건 ‘여유’라고 했다. 1부터 만까지 ‘여유 지수’를 표현하라고 한다면, 20이란 수치에 겨우 도달했다고 한다.
“제가 갈 길이 백만입니다. 한 작품 한 작품씩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내가 성장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렇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연기자라는 직업이 더 매력 있는 듯 하다. ‘여유’는 아직까지도 못 느끼고 있다. 연차가 쌓이고 연기를 해 내갈 수록 책임감도 더 느끼는 것 같다. 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해서 제 작품을 보시는 분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정말 귀한 시간을 내서 제 작품을 봐주시는 것을 알고 있다. 맡은 만큼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한편, 이세영은 오는 4월 영화 ‘수성못’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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