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현재로서는 제대로 된 조치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준비 부족과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 및 태도 등을 고려할 때 “아직은 개최 여부도 예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 역삼동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한미 관계의 미래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평가해달라는 청중 질문에 “영리하다(smart)고 생각한다”며 “북미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문 대통령은 제대로 된 조치를 했고 현재로서는 절벽으로 굴러떨어지는 걸 막았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이 있을지도 사실 지금 모르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준비가 잘 안 되고 있다. 설사 열린다고 하더라도 실패로 끝나면 더 위험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장 선상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는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판단하기 힘들고 북미 회담이 실패하면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 역시 실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를 창시한 저명한 국제정치이론가다. 공격적 현실주의는 국제적 무정부 상태의 위험성과 그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의 행동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강대국의 목적은 지역 패권국이 되는 것과 다른 국가가 지역 패권국이 되는 걸 막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에 대해서는 그간 “지정학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다”면서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이에 따른 갈등 증폭 과정에서 한반도가 특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견해왔다.
그는 “미국은 서반구에서 자신이 가진 패권만큼의 힘을 중국이 지역 내에서 가지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안보 경쟁은 불가피하고 전쟁 위험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중 경쟁으로 인한 전쟁 발발 가능성이 과거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전쟁 가능성보다 높다고 본다”며 “특히 동아시아에서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당장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현재 중국은 시간이 자기편이라는 걸 인식하고 미국에 싸움을 걸지 않고 위기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경제 성장을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덩치를 충분히 더 키운 후 패권 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문제 역시 현실주의 정치학자의 관점에서 평가했다. 그는 “세계에서 핵무기를 북한만큼 필요로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미국이 진정으로 북한 정권의 교체를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까.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중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일부 맞기는 하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가진 불만은 핵무기가 아니라 일본과 미국을 향한 북한의 도발적 레토릭”이라고 지목했다. 북한의 이런 도발적 행동으로 인해 일본이 핵무장을 하려 들 수 있고,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개입의 여지가 더 커지는 데 대한 불만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앞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안보 경쟁이 심화되면 중국은 북한에 완충지대 역할을 원하고 이런 과정에서 중국과 북한은 실질적으로 더 긴밀해질 것”이라며 “한미 관계만큼 북중 관계도 깊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날 고등교육재단 특강에 이어 22일에는 한반도평화만들기재단, 23일 이화여대에서도 특별강연을 할 예정이다.
/글·사진=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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