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이렇게 꼬인 데는 정부가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정부는 북핵과 관련해 수차례 말을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에서 “포괄적 접근을 통해 북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완전한 해결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에는 ‘고르디우스 매듭 끊기’식 일괄타결 언급도 나왔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조치를 언급한 후 정부에서 일괄타결론은 쏙 들어갔다. 북한에 리비아식 핵 해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렇게 북핵 해법에 대한 정부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으니 미국이 못 믿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최근 북핵을 둘러싼 상황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과거에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과정에 있었지만 지금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서 핵이 동결되면 우리는 영원히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협상-보상-파기의 악순환을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북 비핵화를 위한 흔들림 없는 한미 연합전선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FTA를 대북협상과 연계하려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당장 다음달 27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담보 없이 남북관계 개선을 서두르면 두고두고 미국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태에서 북핵 해법을 두고 엇박자를 내면 우리 안보는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2개월간의 정부 대응에 국민의 안위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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