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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과 선군정치]북한은 계획경제가 아니다?

■ 헤이즐 스미스 지음, 창비 펴냄





지구상 최악의 세습국가, 핵 광기에 사로잡힌 나라, 인민을 굶겨 죽이는 나라….

‘북한’ 하면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딱히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자세 고쳐 않고 북한을 좀 더 입체적으로 분석해 볼 요량하면 대부분은 말문이 턱 막힐 것이다.

매일 같이 뉴스로 소식을 접하는 북한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을 얼마나 깊이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좌(左)로 가도 우(右)로 가도,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스스로 손뼉 칠 만큼 성과를 못 내는 배경에는 북한에 대한 일차원적 단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헤이즐 스미스 교수의 ‘장마당과 선군정치’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저작이다. 스미스 교수는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대(SOAS)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학자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로 탄탄한 실증적 기반을 확보한 저자는 잘못된 상식과 편견의 교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인식 바로 세우기를 시도한다. ‘미지의 나라 북한이라는 신화에 도전한다’라는 부제 역시 이런 취지를 명시적으로 선언한다. 세계보건기구(WHO)·유럽연합(EU)·세계식량계획(WFP) 등 다양한 기구·기관의 통계를 활용하다 보니 각주와 참고 문헌만 무려 148쪽이다.

이 책은 먼저 ‘북한은 여전히 계획경제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 나라’라는 일반의 통념을 뒤엎으면서 출발한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심각한 식량 부족과 경제 리더십의 부재로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을 겪었다. 100만명의 사망자가 속출한 ‘고난의 행군’이었다. ‘국가=생존을 보장하는 울타리’라는 등식이 깨진 것을 직감한 북한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자력갱생의 이데올로기를 체득하기 시작했다.



개인들은 미용실·사진관·식당을 열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벌었으며 국수나 술처럼 제조법이 간단한 식품을 소규모로 만드는 가구들도 생겨났다. 이렇게 형성된 ‘장(場)마당’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철저히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결정됐다. 비록 북한의 시장화가 정치적 자유화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경제 분야만큼은 북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스미스 교수는 시장의 통로가 열리면서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 기회도 함께 확대됐다고 소개한다. 북한 주민들은 각국의 무역상과 방북 외국인 등을 통해 책과 잡지, CD와 DVD 등을 다양하게 접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정권의 거짓 선동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무지하지 않으며 남한과 중국에 비하면 북한의 경제력은 창피한 수준이라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년 전부터 다른 나라의 팝 스타나 유명 배우들이나 할 법한 헤어스타일과 패션으로 무장한 북한 청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 한 토막도 전한다. 북한학 전문가인 스미스 교수는 수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은 물론 2년 넘게 현지에 체류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오해와 편견을 걷어낸 ‘민낯 그리기’를 목표로 출발한 이 책은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를 총망라한 역사서로도 읽힌다. 김일성의 항일투쟁부터 오늘날의 핵 무장에 이르기까지 가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한 채 북한의 근·현대사를 숨 가쁘게 스케치한다. 외국인의 저작이라는 사실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끄럽고 유려한 번역(김재오 영남대 교수)은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균형 잡힌 서술’을 제1명제로 삼다 보니 북한 정권의 명백한 악(惡)에 대해 소심한 태도로 일관한 부분은 아쉽다. 저자가 기니와 짐바브웨를 예로 들며 ‘북한 정권이 유별나게 귄위주의적인 것은 아니다’고 주장할 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어쨌건 김씨 가문은 국가를 세웠다’며 은근슬쩍 면죄부를 줄 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허세를 중단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 역시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다소 허탈하게 느껴진다. 2만5,0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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