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스트레스 풀러 나왔어요. 져도 괜찮으니 ‘화끈한’ 경기 만들어줬음 좋겠어요.”
서울 강남구 코엑스광장에서 만난 서민호 씨(28)는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길거리 응원전에 참여한 게 처음이라는 서 씨는 러시아월드컵 첫 경기에 들뜬 목소리였다. 서 씨는 “친구들 모두 취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즐기고자 다들 한마음으로 모였다”며 “주최 측에서 음료수와 응원 도구를 직접 챙겨줘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거리응원이 펼쳐지는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는 이날 자정부터 19일 오전 8시까지 삼성역 사거리에서 코엑스 사거리까지 약 600m 구간이 통제됐다.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시청광장도 오후 6시부터 붉은 옷을 입은 5,000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찼다. 가족과 연인의 손을 잡고 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응원문화 자체를 즐기러 왔다”며 “즐겁기만 하다면 져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돗자리를 펴고 치킨을 먹는 대학생들은 경기결과보다도 거리응원 자체로 신난 모습이었다.
광화문광장에 오후부터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는 건국대학생 박지예(21)씨는 “시험이 일찍 끝난 기념으로 친구들과 함께 경기를 보러 왔다”며 “함께 응원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 좋다”고 전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외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미국인 루시아(21)씨는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모여 응원하는 한국의 문화가 정말 놀랍고 신기하다”며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 것 같아 벌써 설렌다”라고 말했다.
가족끼리 다정하게 손잡고 자리 잡은 광경도 곳곳에서 연출됐다. 삼성역 인근에 산다는 고동윤(32) 씨는 “평소 축구를 잘 모르고 한국 대표팀도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막상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응원전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바뀌어 퇴근 직후 가족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뒤늦게 왔다”며 “아내와 함께 문화 행사를 즐길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이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16강에 대한 부담보다는 대표팀이 경기 자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줘도 충분히 감사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진용·신다은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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