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동북쪽으로 280㎞ 지점에 친황다오(秦皇島)라는 항구도시가 있다. 산둥반도 위쪽의 발해만에 접한 이곳은 지명에서 보듯 진나라 시황제와 인연이 깊다. 진시황이 늙어 죽지 않는 불로초를 구하려고 이곳에 행차한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에도 시황제의 행궁 유적지가 있다. 그가 만든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하이관도 이 도시의 관할 지역이다.
친황다오 시가지에서 약간 떨어진 베이다이허(北戴河) 해변은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드넓은 백사장으로 유명한 천혜의 피서지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 평균기온이 20도 중반으로 서늘해 고대로부터 중국 왕실과 귀족들의 여름 휴양지로 명성이 높았다. 청나라 말기에는 친황다오가 개항하면서 베이다이허 해변에 외국인과 부자들의 별장이 집중적으로 건립됐다고 한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세계가 이곳을 주목한다.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휴가를 겸한 국사를 논의하는 비공개회의가 베이다이허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베이징 권력이 여름철이면 이곳에 모인다고 해서 베이다이허를 ‘중국의 여름수도’라고도 한다.
베이다이허가 중국 현대 정치사의 막후 무대로 주목받은 것은 베이징의 여름철 살인적인 폭염에서 비롯된다.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1953년에 폭염을 피해 이곳에서 정사를 돌본 것을 계기로 이듬해 중국 공산당 정치국 회의가 비밀리에 열렸다. 이때부터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 지도부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최고 지도부의 인사와 국가의 주요 정책 방향이 이곳 수뇌부 비공개회의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과 대만 진먼다오 (金門島) 포격도 여기서 결정됐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권력승계자로 부각 된 것도 2007년 이곳 회의가 끝나고서였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가 지난주 말부터 열렸다. 통상 2주일가량 열렸는데 이번에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삼엄한 경비가 풀려야만 끝난 지 알 수 있다. 어떤 사안이 논의될지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지만 아무래도 중국의 최대 현안인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화두에 오를 것으로는 짐작된다. 미국과 끝까지 맞짱을 뜰지, 아니면 힘을 기를 때까지 기다리자는 ‘도광양회’로 회귀할지 난상토론이 예상된다. 중국 지도부가 어떤 구상을 그릴지 주목된다. 한참 지나서야 확인되겠지 말이다만.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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