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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누가 반금융 정서를 부추기나

김홍길 금융부장

가산금리 규제·카드 수수료 등

탐욕프레임으로 금융사 적대시

금리인상땐 은행역할 커질텐데

당국 눈치에 위기대처 가능할지





최근 금융권 임직원의 연봉 공개를 앞두고 한 은행 임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신문 제목에 최고경영자(CEO)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대체 연봉을 얼마나 받길래 그리 걱정을 하느냐고 되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예상보다 과하지 않았다. 욕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너무 과민반응을 보인 것 아니냐”고 하자 “요즘 분위기를 알면서 그러느냐”며 더 좌불안석했다. 신문 제목에는 직접 관여하기 어렵다는 원론적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쓴웃음이 나왔다.

국내에서 금융 CEO의 고액연봉 논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듯하다. 연봉은 곧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인데 유독 금융권만 욕을 더 먹는 분위기다. 기저에는 은행이 고금리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은행이 부실화됐을 때 혈세를 투입해 살려놓았더니 이제는 국민을 상대로 고리 장사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은행이 돈을 너무 많이 벌면 안 되고 CEO나 임직원들도 고액연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사회 통념상 고액연봉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민간은행 연봉이 적다 혹은 많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금융권에 몸을 담는 순간 고액연봉의 꿈은 접는 게 속 편한 세상이 됐다.

문제는 이런 반금융 정서를 금융당국이 은연중에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부터 제기한 지배구조는 물론 가산금리 규제에다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 즉시연금 가입자 일괄구제 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을 밀어붙일 때마다 당국은 금융사들을 ‘탐욕적이고 뭔가 큰 문제를 안고 있는 집단’으로 몰아갔다. 은행에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일단 빚을 내면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가 불만이다 보니 반금융 정서가 자라날 자양분은 갖춰진 셈이다. 금융관료들도 사석에서는 금융사 욕을 그렇게 많이 한다. 듣기 민망할 때도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고금리 저축은행 명단을 공개한 것은 반금융 정서 확산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어찌나 답답했던지 당시 한 저축은행 임원은 “졸지에 고리대금업자가 돼버렸다”며 억울해했다.

금융당국이 최근 실시한 조직개편에도 반금융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현 정부가 서민금융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조한다고 투자은행(IB) 육성 업무를 맡았던 자본시장국을 금융소비자국 밑으로 넣어버렸다. 국장 가운데 서열이 가장 낮았던 자본시장국이 유탄을 맞은 것이지만 시장에서는 ‘당국이 금융을 육성하기보다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고 해석했다. 금융을 키우기보다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이 같은 촌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시중은행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올해는 어떻게든 넘기겠지만 내년에는 진짜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얘기들을 심심찮게 한다.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한계 가계나 기업의 부실이 커지는 위기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은행은 위기를 흡수하는 ‘저수지’ 역할을 해야 하는데 돈을 벌지 못하는 은행이 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은행 임원은 “(금리 인상기 때는) 은행이 돈을 벌 기회인데 이때 은행에 돈을 벌게 해야지 돈 많이 벌었다고 욕을 하면 (위기 때) ‘버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며 “금리를 올리는 데도 감독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고 여론까지 살펴야 하는 은행들은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이익이 많다 적다는 식의 눈앞의 사실만 놓고 논쟁을 벌이다 보면 당장 내년 또는 이후에 닥쳐올 금리 인상에 따른 리스크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듯이 은행의 지갑이 두둑해야 여유롭게 충당금을 쌓아 가계·기업 부실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

금융사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욕을 먹고 반금융 여론에 눌려 기가 죽은 금융사를 향해 금융당국이 ‘주적’을 대하듯 하는 상황이 오래되면 금융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 후폭풍은 상상하기 나름이다. 금융을 바라보는 당국의 시선이 바뀌지 않고서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김홍길 금융부장 wha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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