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에 함께 끌려간 형 친구한테서 형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전쟁 때 아마 우리 형하고 총부리를 마주 잡았을지도 몰라요.”
목원선(85)·원구(83) 형제는 북한군에 강제징집돼 죽은 줄 알았던 형을 68년 만에 만났다. 원선씨는 북측의 큰형 김인영(목원희에서 개명)씨가 전쟁 발발 후 한 달쯤 지나 서울 성동구 중앙시장에 먹거리를 사러 갔다가 북한군에 강제징집돼 죽은 줄만 알았다. 18세 나이로 국군에 입대했던 원선씨는 전방에서 큰형과 국군과 인민군으로 만났을지 모른다.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다시 만난 이들은 오열하면서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볐다.
26일까지 진행되는 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북측 이산가족들이 신청해 남측의 가족을 만나는 자리다. 남측 가족들은 전쟁통에 이런저런 이유로 북으로 가게 된 가족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상봉 신청도 하지 않다가 이번에 연락을 받고 놀란 경우가 많았다. 한상엽(85)씨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다는 소식에 큰형 한상이(86)씨가 생각나 제사까지 지냈으나 사흘 뒤 형이 자신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2차 상봉행사의 유일한 부자 상봉 사례 조정기(67)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측의 아버지 조덕용(88)씨와 얼굴을 마주했다. 덕용씨는 6·25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당시 부인의 뱃속에는 태어나지 않은 정기씨가 있었다. 어머니는 상봉 연락을 받기 불과 50여일 전에 세상을 떠났다. 정기씨는 아버지와 만나 “맏아들이에요, 맏아들”이라며 “아버지가 살아계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어머니가 68년간 풀지 못한 한을 눈물로 풀어놓았다.
북측의 안갑수(83)씨를 만난 남측의 동생 갑순(82)·광수(64)·영옥(60)씨는 이번 상봉을 통해 68년 만에 오빠의 생존 사실을 알았다. 이들 가족은 전쟁 당시 38선 이북지역인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 살고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38선 위아래로 피신을 다녔는데 갑수씨가 위쪽으로 피난 간 후 가족들은 68년 동안 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여동생 갑순씨는 갑수씨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자 오빠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오빠”라며 오열했다.
이번 남측 방문단의 최고령자인 강정옥(100)씨는 휠체어를 타고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노래가 장내에 울려 퍼지고 북측의 여동생인 강정화(85)씨가 아들 최영일(50)씨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서자 가족들은 한눈에 알아보고 “저기다, 저기” 하고 외쳤다. 정옥씨는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옆자리에 앉은 정화씨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이고 정화야, 안아줘야지, 정화야 고맙구나”라고 연신 이름을 부르며 그리웠던 마음을 표현했다.
파킨슨병 환자인 편찬옥(76)씨는 이날 북측 형 편찬규(88)씨를 만났지만 병 때문에 쉽게 대화를 잇지 못했다. 찬옥씨는 ‘형님이 어떻게 지냈는지, 가족은 누가 남아 있는지, 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등 궁금한 점을 편지로 전달했다. 남북 가족들은 이날 단체상봉과 환영만찬을 진행한 뒤 25일 개별상봉과 객실 중식, 단체상봉, 26일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 순서로 총 12시간을 함께 보낸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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