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 대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을 거론하며 “사법부의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사법농단 사태를 직접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사법부의 70돌을 축하하기 위해 사법부 요인들이 집결한 가운데 이런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은 사법부가 처한 신뢰의 위기를 엄중하게 인식한 만큼 사법부에 강력한 개혁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법부 개혁을 촉구한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사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적인 해결을 강조하며 삼권분립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동안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언급을 삼갔던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지난 정부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사법부가 겪어보지 못했던 위기”라고 지적하며 “사법부 구성원 또한 참담하고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매우 엄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사법부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부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유일한 행정수반이자 국가정상이 가장 강력한 수위의 메시지를 내놓았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사법부의 신뢰 위기가 이렇게 지속된다면 국민의 삶이 불안해지는 것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사회개혁 동력 역시 무뎌질 수 있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국회가 사법개혁을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사법개혁을 넘어 일련의 권력기관 개혁의 불씨를 살려가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아울러 이날 발언에는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만족스럽지 않다’며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현 사법부 엘리트들에게 민심이 갈구하는 시대적 개혁 요구를 읽어내라는 주문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연달아 기각되며 ‘법원이 치부를 감추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여권에서도 김 대법원장이 확실한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지적한 바 있다. 지난 달 22일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야 한다”며 “대법원이 사법적폐를 감싸고 돈다면 국회도 특별법 등의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율사 출신의 문 대통령은 이런 개혁 작업이 사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날 법원 내부의 용기가 사법부의 독립을 지켰듯 이번에도 사법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며 “정부뿐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 공직자 모두는 법치주의의 토대 위에 서 있다”며 삼권분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정부에서 사법부 독립이 지켜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이번 개혁 작업에서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법부의 독립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사법개혁 전체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는 데다, 자칫 정권이 사법부에 개입하는 것처럼 비칠 경우 여론의 역풍에 처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삼권분립에 의한 사법부 독립과 법관의 독립은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저도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철저히 보장할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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