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이 음악을 계속하게 합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갈 때조차 발견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알아가는 기쁨을 계속해서 추구하고 싶습니다.”
영화 ‘마지막 황제’(1986)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작업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 그래미상을 거머쥔 세계적인 영화음악 거장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의 일상과 음악세계를 조명했던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 코다’에서 사카모토 감독은 “음악, 특히 작곡은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변화를 일으켜가는 과정을 담는 작업”이라고 소개한다. 쓰나미로 침수된 피아노, 바닥에 빗물이 튕기는 소리 등 세상의 온갖 소리를 수집하고 음악의 재료로 삼는 거장의 모습은 울림이 컸고 국내 팬층은 더욱 두터워졌다.
거장의 부산국제영화제 방문은 음악인생 40주년을 맞은 해이자 23회째인 올해에서야 이뤄졌다. 그는 아시아 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 기여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 수상자이자 오픈시네마 부문 월드프리미어 초청작 ‘안녕, 티라노:영원히 함께’의 음악감독으로 축제 현장을 찾았다.
첫 방문인 만큼 사카모토 감독은 개막식부터 ‘안녕, 티라노’의 공식일정까지 모두 챙기며 동분서주했다. 4일 개막식에서는 축하공연 연주자로 나서 직접 선곡한 ‘안녕, 티라노’ OST 변주곡과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메인 테마곡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연주했다. 1983년 제작된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그를 영화음악의 세계로 이끈 작품으로 사카모토 감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대피소에서 열린 위문공연에서 이 곡을 연주하며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평소 다양한 사회 이슈와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그답게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 소감도 남달랐다. 그는 “한반도에 드디어 평화가 찾아오려고 한다”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고 축하인사로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이 생긴다는 건 제가 음악에 참여한 ‘안녕, 티라노’ 작품의 핵심”이라며 “이 세상에서 폭력에 대한 지배가 없어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한·중·일 공동제작 애니메이션 ‘안녕, 티라노’ 관련 기자간담회 자리에선 짓궂으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6일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인데 영화에서 본 배우들이 개막식에서 저와 같은 열에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며 “세계적인 영화제에 많이 가봤지만 레드카펫 길이만큼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최고”라며 첫 방문 소감을 남겼다. 그는 이어 “지난해 함께 작업했던 ‘남한산성’의 배우와 스태프들을 다시 만났고 대만의 차이밍량까지 함께 무대에 서는 뜻 깊은 자리였다”며 “다만 정말 좋아하는 김태리 씨가 오지 않은 것이 무척 안타깝다”며 천진한 미소를 띄기도 했다.
처음으로 도전한 애니메이션 음악 작곡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는 “보편적인 요소로 현재를 표현하면서도 나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고민이 컸다”며 “음악을 만들 때는 선의 움직임만 보고 모든 것을 상상하며 작업해야 했고 폭넓은 관객층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점 때문에 큰 도전이었는데 이번 영화제에서야 완성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안녕, 티라노’는 익룡이지만 하늘을 날지 못하는 작은 공룡 프논, 덩치만 거대한 채식주의 육식공룡 티라노가 함께 모험에 나서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소중한 존재가 되는 과정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미야니시 타츠야의 ‘티라노 사우루스’ 시리즈 중 12권 ‘영원히 함께해요’를 원작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명탐정 코난’으로 잘 알려진 시즈노 코분 감독이 연출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제작사인 일본의 애니메이션 명가 데쓰카 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았다.
/부산=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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