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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 성장을 외면하는 나라

논설실장
정부 '다함께 잘살자'는 명분 아래
성장보다 분배에 초점둔 경제정책
주력산업 쇠퇴속 새 동력 못찾으면
다함께 못사는 나라로 전락할 뿐

[오철수 칼럼] 성장을 외면하는 나라
오철수 논설실장

중세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네덜란드는 풍요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이렇다 할 지하자원이나 생산물이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부를 축적하기는 쉽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1425년께 네덜란드 인근 북해에서 청어가 잡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발트해에서 잡히던 청어가 해류 변화로 인해 북해까지 밀려든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바다에서 잡아 올린 청어를 바로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염장법을 개발했다. 덕분에 먼바다까지 조업을 나갈 수 있게 되면서 청어 포획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소금에 절인 청어는 식량이 부족했던 유럽 전역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여기에 뛰어난 선박 건조기술이 가세하면서 네덜란드는 단숨에 유럽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16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선박세는 배의 갑판면적을 기준으로 징수했는데 네덜란드는 갑판은 좁게 하고 화물칸은 넓혀 경쟁 선박보다 2배 많이 적재할 수 있었다. 1602년에는 동인도주식회사를 설립해 원양무역시대를 열었다. 이를 통해 세계의 바닷길을 장악하게 되면서 바야흐로 네덜란드의 황금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처럼 막강했던 네덜란드가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은 17세기 후반 프랑스와 영국이 국제무대로 진출하면서부터다. 이때 네덜란드의 결정적인 패착이 등장한다. 동진하는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해군보다는 육군에 주안점을 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경쟁력이 있던 해군을 제쳐 두고 경비가 훨씬 많이 드는 육군을 강화했으니 국가재정이 고갈되고 국력이 약화된 것은 당연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영국에 바다의 패권을 넘겨주고 이등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17~18세기 네덜란드의 사례는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놔두고 엉뚱한 길로 접어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잘 말해준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때 잘나가던 국가나 기업도 자칫 방향을 잘못 잡게 되면 곧바로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지금은 대전환기다.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사활을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독일·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국가들은 인공지능(AI)과 무인자동차·드론·스마트 팩토리·로봇·5세대 통신(5G) 등 저마다 강점을 가진 영역을 중심으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규제완화와 투자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국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등극하는 것을 목표로 AI와 5G 통신 등 차세대 먹거리 분야에서 인재영입과 스타트업 인수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유독 우리나라만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글로벌 생존경쟁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불평등 해소를 경제 분야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기존 성장방식을 답습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아 양극화가 심화했다”고 했다. 다분히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두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포용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방점은 분배에 찍혀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혁신성장에 대해서는 말만 무성할 뿐 실제 진전되는 것은 거의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중요한 빅데이터에 관한 규제완화는 정권 출범 1년 7개월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에 우수한 의료기술을 접목하면 원격의료서비스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희한한 논리에 가로막혀 옴짝달싹을 못하고 있다.

광복 이후 70여년 동안 우리나라는 1차 산업혁명에서는 뒤졌지만 국가적인 노력 덕분에 2·3차 산업혁명에서는 짧은 시간에 다른 나라를 따라잡아 세계 9위의 무역대국을 이뤘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주력산업이 급속도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신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마당에 우리만 성장이 불평등을 키운다는 논리에 갇혀 분배에 치중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가 설 자리는 없다. 성장이 없으면 일자리가 위축되고 그러면 당연히 국민소득도 줄어든다. 일자리 쇼크 상태를 보이고 있는 지금 노동시장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분배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가진 것이 줄어드는데 뭘 더 나눠줄 수가 있겠는가. 이는 다 함께 못살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양극화만 해소되면 다 함께 못살아도 괜찮다는 것인가.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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