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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史도 그랬다...명필의 조건 '따라쓰기'

■한글박물관 '韓·中 서예전'
김정희·왕탁 등 서예가들
옛 글씨 모방했던 '임서' 등
韓·中 유물 120점 선보여
조선왕실 한글 궁체도 눈길

秋史도 그랬다...명필의 조건 '따라쓰기'
왕희지의 아들인 왕헌지의 ‘경조첩’을 청나라 문인 왕탁이 따라 쓴 글씨.

자고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인물을 뽑을 때 그 기준으로 신수와 말씨, 글씨와 판단력(文理)을 보고 고르라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의 관리 등용 기준이었던 신언서판은 동아시아 전반에 퍼졌다. 재주 많은 묵객도 시(詩), 서(書), 화(畵)에 두루 능해야 삼절(三絶)로 추앙받을 수 있었다. 그중 특히 글씨는 숱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였고, 그 대표적 방법이 옛 글씨를 따라 쓰는 ‘임서(臨書)’였다.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인 셈이다. 임서를 중심으로 17세기 이후 한국과 중국의 서예 문화를 한자리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특별전 ‘청인의 임서’와 ‘명필을 꿈꾸다’가 서울시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박물관이 지난해 중국 산둥박물관과 교류·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후 처음 함께 기획한 전시로 우리의 국보에 해당하는 중국의 1급 문화재를 포함해 중국 유물 23건 30점과 한국 유물 71건 90점이 나왔다. 한·중 양국은 긴 세월 서예문화를 공유해 왔고 고증학과 금석학의 발전 이후에는 새로운 서예문화의 변화도 함께 경험했다.

둘로 나뉜 전시 중 ‘청인의 임서’는 산둥박물관 소장품전이라 해도 될 정도다. 귀한 유물의 보존도 고려해야 하기에 다소 전시장 내부가 어두운 편이지만 그래서 더 집중하고 들여다보게 한다. 명나라의 서예 전통을 이어받은 청나라가 명필의 글씨를 연마하고 연구하는 첩학(帖學)의 전성기를 맞고, 고증학을 기반으로 비석 글씨를 분석하는 비학(碑學)이 발전해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청나라 문신이자 박학다식한 것으로 유명했던 왕탁(王鐸)은 행서와 초서에서 왕희지와 그 아들 왕헌지의 서풍(書風)을 익혔다. 왕탁이 왕헌지의 경조첩(敬祖帖)을 따라 쓴 작품은 중국의 1급 문화재다. “필력이 힘차서 여성답지 않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강여장이 왕희지가 남긴 상우첩(上虞帖)을 베낀 글씨 또한 1급 문화재다. 임서의 원본(原本)이 되는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 비교하며 관람하는 것이 가능하다.

秋史도 그랬다...명필의 조건 '따라쓰기'
추사 김정희가 전서를 생각하며 한나라의 예서를 쓴 ‘전의한예(篆意漢隷)’

흰색과 초록색이 밝은 분위기를 전하는 ‘명필을 꿈꾸다’ 전시에서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조선 후기 서예가들의 주요 임서 작품, 조선 왕실의 한글 궁체 임서와 습자 자료를 소개한다. 김정희가 한나라 전서(篆書·중국 진시황이 제정해 도장에 많이 사용되는 서체)를 모아 쓴 ‘한전잔자’(漢篆殘字)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다. 김정희의 추사체는 전한(前漢) 시대의 예서(隸書·전서보다 쓰기 쉽도록 고안한 서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글씨는 노년의 추사가 얼마나 글씨를 연구했는지 추측할 근거가 된다. 추사가 전서를 생각하며 예서를 쓴 ‘전의한예’(篆意漢隷)를 보면 그가 오른 글씨의 경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귀한 유물도 볼거리지만 조선왕실에서 글씨를 대필한 궁인인 서사상궁(書寫尙宮)이 가지런한 한글 궁체를 연습한 유물도 인상적이다. 손글씨보다 컴퓨터 자판이 더 익숙한 요즘 세대는 서체를 쓰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게 일상인지라, 전시장 곳곳에서 탄성이 들리기도 했다.

전시를 기획한 유호선 학예연구관은 “임서의 첫 번째 과정은 형태를 익히는 형임(形臨)이고, 두 번째는 형태보다는 서예가의 정신과 뜻에 중점을 두는 의임(意臨)이며, 세 번째는 원본을 보지 않고도 재현하는 배임(背臨)”이라며 “훌륭한 서예가가 되려면 임서를 반복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제공=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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