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정치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했던 이재명 경기지사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이 지사에 대한 당원권을 법원 판결 때까지 유보하기로 결론 내며 이 지사는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 사건에서 아내 김혜경씨가 불기소 처분된 데 이어 탈당·출당 논란도 잦아들며 재판 결과에 따라선 대권행보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게 된 셈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2일 “이 지사가 당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면서 별도 조치 없이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여러 가지를 종합해 판단하건대 당의 단합을 위해 이를 수용하는 게 옳겠다고 최고위원들 간 논의가 있었다. 재판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11일 ‘친형 강제입원’ 등 3가지 사건으로 기소된 이 지사에 대한 징계 논의가 이어지다 하루 만에 봉합된 데는 이 지사의 위기관리 능력이 한몫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는 기소에 대비한 플랜B를 마련해 놓은 듯 이틀 연속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던지며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기주도적으로 탈당ㆍ출당론을 잠재웠다.
앞서 이 지사는 검찰의 기소가 발표되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갖고 “예상했던 결론이라 당황스럽지는 않다”며 “기소된 사건의 진실규명은 법정에 맡기고 이제 오로지 도정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그러면서 “저는 여전히 자랑스러운 민주당의 당원이다. 평범한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며 당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여러분도 공정사회 대동세상을 바라시면, 저에게 탈당을 권할 것이 아니라 함께 입당해 달라”고 강조했다.
기소 시점을 계기로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탈당ㆍ출당론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날 새벽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의 단합을 위해 평당원으로 백의종군하겠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이 대표에게 전화해 이 같은 입장을 호소, 결국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당원권 유보 결정에는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 사건에서 아내 김혜경씨가 불기소처분을 받은 점도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혜경궁 김씨 계정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 관해 쓴 비방 글은 패륜 수준이라는 비난과 함께 민주당 지지자들의 공분을 샀던 사안이었는데, 불기소로 막을 내림에 따라이 지사의 당잔류 명분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여권내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이 지사한테는 당잔류가 대권도전의 중요한 자산이다.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의 거대 양당이 아닌 제3당이라는 루트를 통해 대권고지를 밟은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결국 어떻게서든 이 지사 입장에서는 당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재판의 결과에 따라 집권여당 예비후보로 대권레이스에 도전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 지사는 ‘백의종군’이라는 승부수를 던져서 대권교두보를 사수한 측면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죽으나 사나 민주당원’이라고 배수진을 친 진정성과 이 지사의 두꺼운 지지층을 고려해 당 지도부에서 징계 유보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더해 이 지사의 승부사 기질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향후 도정에 더욱 집중하고 이재명표 개혁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한편 기소된 사건에는 법리판단을 통해 치열하게 준비할 것”이라며 “일로 승부를 걸어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대권 도전의 기회도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beatr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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