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여자선수들의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전 남자 수영 국가대표 선수에게 항소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검찰은 자백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어 애를 먹던 중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스모킹 건’이라고 할 수 있는 몰카 영상을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영상에는 피고인 정씨가 몰카가 제대로 설치됐는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원지법 형사항소6부(김익환 부장판사)는 1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수영 국가대표 출신 정 모(27)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정 씨는 재판 직후 법정 구속됐으며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5년 취업제한 처분도 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최 모(29)씨 등 다른 선수 4명에 대해서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에서의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정 씨는 2009∼2013년 6차례에 걸쳐 경기도의 한 체육고교와 진천선수촌의 여자 수영선수 탈의실에 만년필 형태의 카메라를 설치하는 수법으로 여자선수들의 탈의 장면을 촬영한 혐의를 받아 2016년 11월 불구속기소 됐다. 최 씨 등 다른 선수들은 정 씨가 여자선수들이 없는 시간을 틈타 카메라를 설치하는 동안 탈의실 밖에서 망을 보는 등 범행을 도왔다는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은 실제 영상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정 씨의 자백과 몰카 영상을 봤다는 정 씨 지인의 진술 등을 근거로 정 씨와 공범 등 총 5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2017년 12월 정씨의 자백을 보강할 추가적인 물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기소된 수영선수 5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6월 시작된 항소심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러던 중 검찰이 결정적인 증거인 영상을 찾으며 재판의 흐름이 뒤집혔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13분 38초 분량의 영상이 담긴 CD 1장을 입수해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해당 영상에는 정 씨가 불법촬영용 카메라를 제대로 설치했는지 확인하는 장면과 불법촬영 피해자들이 탈의하는 장면 등이 찍혀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 피고인은 여자선수들의 나체를 촬영해 함께 운동한 선수들에게 배신감과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며 “다만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일부 범죄는 청소년기에 이뤄진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정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낮고 다른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원심과 같은 판결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 씨가 최 씨도 가담했다고 진술한 진천선수촌 범행과 관련, 최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유도 자세히 설명했다. 재판부는 “진천선수촌 탈의실은 문이 두 개여서 특정 출입구에서 망을 봐도 다른 출입구에서 사람이 들어올 수 있고, 곳곳에 다수의 CCTV가 설치된 점, 여러 선수와 코치가 오가는 점 등에 미뤄볼 때 해당 범죄에 최 피고인이 가담했다는 정 피고인의 진술이 증명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로써 2년 넘게 수사·재판이 이어지며 숱한 논란을 낳은 이른바 ‘수영선수 몰카’ 사건은 항소심 재판에서 정 씨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면서 결말이 났다. /이다원 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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