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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거친 거위털 뽑기…잊혀 진 ‘트라우마’ 소환하는 文 정부

이철균 경제부장

종부세율 올리고 공정가액 인상

서울 공시가격도 2배 이상 껑충

종부세 대상 참여정부 곧 추월

편가르기식 증세 후폭풍 부를것





50만5,000명. 지난 2007년 11월 말에 고지된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다. 정부는 전국 가구주의 2.1%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2005년 종부세 신설 때 밝혔던 “상위 1%에 과세하겠다”고 한 것에 비하면 두 배였지만 개인 기준으로도 38만1,000명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 정부는 조세저항이 클 것으로 예측하지는 않았던 듯싶다. 부자를 향한 징벌적 증세라는 비판 여론에 귀를 닫았다. 기득권층의 저항쯤으로 치부했다. 역풍은 거셌다. 민주당은 뒤늦게 “당시 땅 10평도 가지지 않은 국민까지 종부세 도입에 강력히 저항하면서 집권 중반 권력 누수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했다고 한다. 트라우마로도 남았다.

잊혀진 기억을 소환한 것은 참여정부 정신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다. 영화를 다시 돌려보듯 여러 장면이 겹친다. 먼저 종부세.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종부세를 대폭 강화했다. 최고세율을 3.2%로 올렸고 공정가액 비율도 단계적으로 5%포인트씩 올려 2022년에는 100%를 적용한다. 다만 1주택자의 과세 기준만 9억원(공시가격)으로 유지했다. 6억원까지 낮추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관철하지는 않았다. 급격한 대상 확대가 조세저항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렇다고 종부세 대상이 줄어들까. 국세청이 발표한 통계다. 지난해 종부세 납세 의무자는 46만6,000명에 달한다. 2017년(40만명)보다 16.5%나 늘었다. 납부액도 16.3%가 늘어난 2조1,148억원. 증가 속도를 볼 때 대상자와 총액이 2007년 실적(?)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1주택자의 종부세 납부 기준인 6억원(2007년)과 9억원(2018년)은 11년간의 집값 상승을 고려할 때 체감도 차이는 거의 없다. 종부세의 역습이 또 예고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주택과 땅의 공시가격을 빠른 속도로 올리고 있다. 정부는 정상화이고 역차별 해소라고 역설한다. 일견 맞다. 집값 상승분만큼 합리적인 조정은 해야 한다.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의 차이를 해소하는 것도 옳은 방향이다.

문제는 속도와 그에 따른 충격파다. 올해 공시가격 상승률은 지난해의 두 배 안팎이다. 전국은 5.51→9.13%, 서울은 7.92→17.75%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일각에서는 핀셋 인상이라고도 평한다. 시세 15억원을 기준으로 해 인상률을 차등화했다는 얘기다. 25억원을 넘는 주택은 평균 36%, 15억원을 넘으면 21%를 올렸다. 반면 15억원 이하는 5.8%, 3억원 이하는 3%만 상향 조정했다.



가파른 공시가격 인상을 두고 여러 미사여구로 포장을 해도 결국 세금 후폭풍은 피할 수 없다. 공시가격이 7.92% 올랐던 지난해 공시가격 6억원 초과의 서울 고가주택 가운데 재산세가 상한 기준 30%를 적용받는 곳이 속출했다. 강동구가 65→3,952건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송파구도 1,149→5만4,112건으로 늘었다. 올해의 공시가격 상승률은 지난해의 두 배다. 단순한 산술만으로도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한 재산세 상한 속출은 올해도 불가피하다.

정부의 종부세와 공시가격 인상 정책을 두고 찬성의 목소리도 분명 있다. 더 많이 가진 만큼 세금을 더 내는 게 ‘공평과세’라는 것이다. 20억원이 넘는 주택을 갖고 있는데 세금이 고작 몇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 오르는 것에 대한 불만을 두고 “과도한 엄살”이라고도 한다. 조롱이다. 집 한 채에 소득이 없는 노령가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은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래서일까. 내년 총선을 벼르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참여정부를 흔들었던, 종부세 대상자 50만명의 후폭풍이 문재인 정부에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거위 털은 아프지 않게 뽑아야 한다”는 것은 세제당국에는 불문율과 같다. 증세는 워낙 파급력이 커 서서히 단계적으로 하라는 의미다. 감정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이 정부의 증세는 자꾸 편 가르기와 과시만 넘치는 듯하다. 권력을 쥔 채 망각하는 그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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