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각] 아세안이 그리 만만한가

정영현 정치부 차장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29일 경질됐다. 김 보좌관의 ‘설화(舌禍)’ 전력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지난 28일 대한상공회의소 조찬 간담회 발언은 위험 수위를 넘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어깨가 무거운 50~60대를 “할 일 없다고 산에 가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험악한 댓글이나 다는” 집단으로 취급했다. 그러면서 이들에게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으로 가 인생 이모작에 도전하라고 했다. 거듭된 구직 실패로 잠 못 이루는 젊은이들에게도 “여기 앉아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신남방 국가로 가라고 했다. 정치 성향이나 정책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국민들의 힘든 마음에 생채기를 낸 발언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컸다.

김 보좌관의 즉각적인 사과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청와대는 결국 경질 카드를 꺼냈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불편하고 불안하다. 김 보좌관의 거친 발언으로 인해 서운함을 느끼고 상처받았을 사람들이 한국 밖에도 많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다. 아세안·신남방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들 말이다. ‘2030이든 5060이든 한국인이 달려가기만 하면 환영 받고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만만한 지역인가’라며 씁쓸해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한국 정부의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까지 맡은 사람이 은연중에 아세안·신남방 국가들을 낮춰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아세안 회원국들에 비해 크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아세안이 우리가 쉽게 대할 수 있는 상대는 결코 아니다. 아세안의 회원국 수는 10개국, 전체 면적은 448만㎢, 인구는 2017년 기준 6억5,000만명이다. 미중 패권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이로 인해 기존 국제사회의 역학 구도가 흔들리면서 아세안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유망한 경제 파트너인 동시에 안보·기후·환경 등 여러 국제 어젠다에서도 중요한 협력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호주 등도 이들에게 경쟁적으로 구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같은 이유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다자 외교를 강조하면서 신남방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그 같은 노력 덕에 한국은 올해 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국으로 선택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세안과 한국의 관계가 안심할 만큼 공고한 단계에 올라선 건 아니다. 관계 강화를 위한 여정의 초입에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책 핵심 관계자의 입에서 이런 발언이 쉽게 나온 것을 보면 아세안 외교의 길이 우려스럽다. 해당 국가들이 공동번영·평화·사람이라는 세 가지 가치의 관점에서 아세안과의 관계를 다져가겠다는 우리 정부의 목표가 수사에 불과하고 그저 중국을 대체할 돈벌이 대상 정도로 여긴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김 보좌관 경질 사태를 계기로 정부 내 아세안에 대한 시각도 다시 점검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임기 내 아세안 회원국을 모두 방문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이 성공이라는 단어로 마무리되길 바란다면 말이다.
/y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