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시세보기

서울경제

HOME  >  오피니언  >  사외칼럼

[해외칼럼] 엘리트를 위한 변명

  • 2019-02-11 17:25:49
  • 사외칼럼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해외칼럼] 엘리트를 위한 변명
파리드 자카리아

올해 세계경제포럼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엘리트 때리기를 촉발시켰다. 엘리트 층에 대한 비난은 우파와 좌파 모두가 채택한 최신 유행의 정치적 접근법으로 자리매김 했다.

한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폭스뉴스 진행자들이 엘리트층을 일을 그르치는, 현실과 동떨어진 집단으로 싸잡아 비난한다.

다른 편에 위치한 좌파들은 한 작가의 말을 빌려 백만장자들과 억만장자들이 “현대 세계를 망가뜨렸다”고 아우성을 친다.

이 같은 쌍둥이 비판의 밑바닥에는 제 기능을 못하는 세계질서, 소득정체현상, 가중되는 불안정성과 환경훼손을 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대 생활에 대한 어두운 견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과연 사실일까? 우리의 행동이 단두대를 다시 가져와야 할 정도로 형편이 없는 걸까?

가장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척도인 소득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놀랄만한 진전을 이루었다. 1990년 이후 10억 명 이상이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났다.

현재 지구촌 주민들 가운데 극빈자들의 비율은 1990년의 36%에서 10%로 곤두박질치면서 유사 이래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소득향상은 김용 세계은행총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성취”에 해당한다.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불평등은 극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중국에서 인도와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많은 국가들이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채택하고, 서방국들이 그들의 시장 접근을 돕는 한편 인도적 지원, 채무탕감 등을 통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기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은 엘리트들이 지지하는 정책들이었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거의 모든 방면에서 놀랄만한 성과가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1990년 이래 어린이 사망률은 무려 58%나 떨어졌고, 영양실조율도 41%가 줄어들었으며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사망률은 비슷한 기간 43%나 축소됐다.

이 같은 통계치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시들한 반응을 보인다. 사실 그들의 지적대로 이런 수치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같은 기간 중국인들의 상황은 크게 개선됐을지 몰라도 부국의 시민들과는 무관할 수 있다.

바로 그 같은 “불공정성”이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 아젠다와, 현 국제체제에서 우파에 속한 자들의 분노에 연료를 제공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전통적으로 극빈자들을 걱정해온 좌파들이 최소한 10억 명에 달하는 세계 최빈곤국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 주었던 절차에 비판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을 비판할 때, 향수를 자아내는 구질서, 즉 엘리트층이 망가뜨리기 이전의 현대세계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그 같은 황금시대가 언제 있었나?

짐 크로우가 기세를 떨치고, 여성들에게 재봉사나 비서 이외의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던 1950년대인가? 아니면 지구촌의 3분의 2가 사회주의와 억압, 고립 등으로 정체를 겪었던 1980년대인가?

군왕과 공산당 정치위원, 중국의 고위 공무원을 비롯한 엘리트 그룹들 중 어느 집단이 현재 우리의 정치인과 기업인들로 채워진 잡동사니 집합체보다 월등하게 세계를 경영했는가?

서구에서조차 현대 사회로 진입한 후 일궈낸 경이로운 진보를 당연시 하려든다. 평균수명은 늘어났고, 대기와 수질은 개선됐으며 범죄는 줄어들었고, 정보와 소통은 사실상 자유롭다.

경제적으로도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소득은 늘어났다. 소외와 억압을 당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과 기회라는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것 역시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흑인과 백인 사이의 고교 졸업율 격차는 거의 사라졌다. 흑백간의 빈곤 격차 역시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히스패닉 대학 진학률은 껑충 뛰었고 남녀 임금격차는 좁혀졌다.

포천지가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들 가운데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년 사이에 단 한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났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의회에 진출한 여성 의원들의 수는 같은 기간 2배의 증가세를 보였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결혼을 허용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으나 지금은 20개국 이상이 이를 인정한다.

물론 이 모든 분야에서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각각의 분야에서 놀라운 진전이 이루어진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방 근로계층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한 압박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진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 채 소외되고 뒤처져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경제적 지원과 도덕적 품위를 제공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온 방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예전에 그들 자신이 안락한 지위를 누렸던 세계를 새로이 떠오른 다른 그룹들이 변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는데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400년간의 노예생활과 인종격리 및 차별을 겪었던 흑인들의 지위가 높아지고 있다. 수 천 년 동안 구조적으로 종속관계에 있던 여성들이 이제 진정한 평등을 달성해가고 있다. 한때 범죄자 혹은 일탈자로 여겨지던 게이들이 마침내 여러 국가에서 자유롭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일부에게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제자리에 멈춰 서야 할 이유가 되지 않을뿐더러 이것이 우리 모두가 기념해야 할 깊고도 지속적인 인류발전을 대표한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XC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이메일 보내기

보내는 사람

수신 메일 주소

※ 여러명에게 보낼 경우 ‘,’로 구분하세요

메일 제목

전송 취소

메일이 정상적으로 발송되었습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