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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보석' 판사마다 제각각, 사문화된 형법 제95조

백주연 사회부 기자





“보석 허가 났대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이 결정되던 지난 6일 낮 12시04분. 서울 서초동 근처 식당에서 막 토마토리조또 한 숟가락을 뜨려던 참에 타사 기자가 놀라며 말했다.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동석한 변호사는 “보석 대상이 아니지 않느냐”고 한마디 던졌다.

뇌물·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형사소송법 제95조 1항은 ‘피고인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10년 초과 징역형에 해당될 경우 보석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원칙적으로 장기 징역형이 선고된 이 전 대통령은 보석이 불가능하다.

다만 예외 규정이 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제96조 ‘임의적 보석’이다.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법원의 직권 또는 피고인 측의 청구에 따라 보석이 가능하다. 이 전 대통령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결정문에 상당한 보석 사유가 존재한다고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외적인 원칙으로서의 판사 개입은 사실상 보석 허가를 결정짓는 근거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일례로 이 전 대통령의 보석 결정이 나기 하루 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석 신청은 기각됐다. 앞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병보석 신청은 기각됐으나 건강상 이유를 인정받아 풀려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흡연·음주를 하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보석 여부가 판사마다 제각각인 탓에 법치주의가 아닌 ‘판사주의’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법원은 재판부의 정당한 판단이라며 판사의 독립성을 내세우지만 보석제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신은 커지고 있다. ‘상당한 이유’의 기준이 오롯이 판사에게 달려 있어서다. 법학계에서는 보석이 불가능한 경우를 명시한 형소법 95조가 사문(死文)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리패스’인 96조만 내걸면 언제나 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여론을 의식해 자택구금에 해당하는 엄격한 조건을 붙였다고 강조했다.

판사의 독립성도 국민이 부여한 사법권에 기반한 법치주의에서만 가능하다. 재판부 존중과 조건부 석방이라는 점을 들어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하기 전에 일관된 기준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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