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CEO가 매달 '혁신' 챙기니...담보만 보던 여신심사도 바꿔

[혁신금융, CEO가 뛴다]

재무제표·신용등급 의존 탈피...기술·성장성 기반 지원

4대그룹 투자도 늘어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역할 톡톡

블록체인 자격 검증시스템 도입 등 대출관행도 개선





매월 한 차례 열리는 신한금융그룹의 경영회의에는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혁신금융 현황판’을 들고 참석한다. 지난 4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을 위원장으로 전 계열사 CEO가 참여하는 ‘신한혁신금융추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생긴 변화다. 그룹 경영회의의 핵심은 단연 혁신금융 세션이다. 각 계열사 CEO는 혁신금융의 목표와 실제 달성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현황판을 들고 조 회장에게 성과를 직접 보고한다. 한 계열사 CEO는 “개선 수준이 아니라 금융의 DNA를 바꿀 정도의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톱다운 방식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조 회장이 혁신금융 성과를 매달 챙기다 보니 현장에서도 담보 위주의 여신심사 체계가 변화하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재무제표와 신용등급 등에 의존하던 기존 여신심사를 이제는 기술이나 성장성에 기반해 진행하고 자금지원이나 투자를 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온다는 것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그룹 CEO들이 혁신금융 강화를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다. 손수 스타트업 대표를 찾아가는가 하면 성장이 유망한 기업에 자금이 흐를 수 있도록 은행의 여신 관행 혁신에도 나서고 있다.

조 회장은 매달 경영회의를 열면서 계열사로부터 혁신금융 진척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우리금융은 손태승 회장이 직접 지시해 지난 4월 디노랩을 오픈했다. 디노랩은 다양한 기술 스타트업이 은행의 실제 서비스나 데이터를 가지고 기술 실험을 펼칠 수 있는 테스트베드센터다. 보수적인 은행들은 데이터 공개나 개발 환경을 완전 오픈하는 것에 대해 민감해 했지만, 손 회장이 적극 설득해 핀테크들이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이 신기술사업금융업 전업사인 하나벤처스를 설립한 것도 김정태 회장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하나벤처스는 그룹 계열사지만 CEO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을 외부 벤처캐피탈 전문가로 구성하는 등 파격적인 실험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기존 은행 중심의 금융그룹이 해보지 않은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김정태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지주 회장들이 의지를 가지고 혁신금융에 나서다 보니 과거에는 시도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실험들이 속속 실행되고 있다. 긍정 결과도 쏟아지고 있다.

신한금융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신한퓨처스랩을 통해 지금까지 72개 기업과 협업했다. 국내 개인간거래(P2P) 금융의 상징이 된 어니스트펀드도 매출 한 푼 발생하지 않던 시기에 신한금융으로부터 1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고 신한은행과 투자금 신탁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며 성장했다. 서상훈 어니스트펀드 대표는 “투자유치 과정에서 투자금, 기업가치 등을 두고 고민할 때 당시 신한은행장이었던 조용병 회장이 직접 전화해 투자를 받으라고 조언했고 이후 신한과의 장기적 파트너십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인공지능(AI) 챗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인 마인즈랩에 직접 투자하고 컨설팅도 한 뒤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2016년 2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106억원으로 3년 만에 50배나 성장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35%에 달한다. 과거 같으면 은행 문턱도 넘기 힘들었을 스타트업이 하나은행의 마중물 투자로 이제는 글로벌 챗봇 시장 공략을 꿈꿀 만큼 성장했다.



KB금융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플라이하이는 현재 KB그룹 계열사와 제휴하고 있는 사업만 11개에 달한다. 모바일 통합인증 솔루션 기반의 문서발급, 진위확인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이 회사는 2년전 KB그룹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인 KB스타터스에 선정됐고 KB그룹의 CVC펀드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KB그룹과의 안정적인 제휴 사업을 바탕으로 플라이하이의 영업이익과 매출액은 지난해 각각 259%, 93% 증가했고 베트남 등 해외 진출도 추진 중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투자를 유치한 기업’이라는 타이틀은 사업 제휴나 투자 유치에 있어 트랙레코드가 부족한 스타트업들에 공신력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크다”면서 “실제로 은행의 투자를 받고 후속 투자가 잇따르고 사업 수주 규모가 확대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혁신금융을 강조하다 보니 담보없이 기술력만 가진 벤처·혁신기업들에도 돈이 돌기 시작했다. 은행의 보수적인 여신 관행도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5월 의사 등 전문직 대출 등에 블록체인 자격 검증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은 소속 기관과 은행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암호화된 정보를 등록, 조회함으로써 고객이 소속 기관의 자격 인증과 기타 증명 사실을 모바일이나 PC를 통해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됐다. 우리은행은 여신심사시스템에 스타트업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2016년에 설립된 에이젠글로벌은 매출 1억원 남짓의 스타트업이었지만 우리은행으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우리은행의 AI연체예측플랫폼 개발을 주도했다. AI연체예측플랫폼은 고객의 연체 가능성이나 충성도를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출한도나 금리를 산정하는 기술이다.

KB국민은행은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IP)의 가치평가를 통해 부동산 등 별도 담보 없이도 빌려주는 IP담보대출 상품을 지난달 선보였다. 향후 기계, 재고, 매출채권, IP 등을 한 건으로 통합해 담보로 설정하는 일괄담보제도 도입에도 선제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 국민은행의 계획이다.

실제 4대 금융그룹의 직·간접 투자 규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1년간 19개 기업에 180억원을 투자한 우리은행은 올해부터 3조원 규모의 혁신성장펀드를 조성, 이를 모펀드로 매년 1조원 규모의 하위펀드로 확대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KB금융은 윤종규 회장 주도의 혁신금융협의회 출범 후 향후 5년간 혁신기업 지원을 위한 전용펀드를 매년 4,000억원씩 총 2조원 규모로 조성한다. 이미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투자한 금액만 1,000억원에 달한다.

신한금융은 앞으로 5년간 집행할 직·간접투자만 2조1,000억원에 달하는데, 민간·정부 매칭 자금까지 감안하면 투자효과는 7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직접투자규모를 대폭 확대한 건 기업의 성장단계별로 자금을 지원하는 스케일업 전략을 도입하기로 해서다. 금융권 CEO의 혁신금융 노력이 국내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은영·김기혁기자 supia92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