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10년 만에 우리나라 금융권에 대한 실사에 돌입하면서 국내 암호화폐 관련 법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기존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우리나라 암호화폐 시장이 활성화된 반면 관련 법이 전무한 만큼 잠재적 자금세탁 위험성이 높은 국가로 지목되지 않으려면 암호화폐 거래소에 FATF 가이드라인 수준의 의무를 부과하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FATF는 지난달 암호화폐 관련 마지막 총회를 열고 가상화폐 관리·감독 국제기준이 담긴 암호화폐 가이던스와 주석서를 공식 발표했다. FATF의 암호화폐 가이던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논의 끝에 회원국에 전달된 것이다. 이번 가이던스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금융사와 유사한 기관으로 보고 관리·감독 규제 기준을 금융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거래소도 은행·보험·증권사과 비슷한 규제를 적용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내용의 가이던스 발표 직후 FATF 실사단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암호화폐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당장은 가이던스가 발표된 직후로 FATF에서도 조사국에 최신 가이던스를 이행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거래소들이 1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기존 금융권 수준의 AML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총회에서 암호화폐에 금융사에 준하는 기준을 적용할지를 두고 논의가 이뤄졌고 지난달에야 그 기준이 결정된 것”이라며 “지난달에 정해진 최신 국제 기준으로 한국 암호화폐 시장을 당장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업계로서는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 획득이 시급해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당국에서는 앞서 수차례 발생한 암호화폐 거래소의 횡령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최근 2년 새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자의 횡령·기소 사건이 꾸준히 발생한 만큼 FATF가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FATF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게 되면 국제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FATF 평가단은 1일부터 국내 금융시장의 자금세탁 방지와 테러 자금 차단을 확인하기 위해 방한 중이다. 2009년 한국이 FATF에 가입한 후 첫 현장 검사다. 이번 방한에서는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씨티은행·SC제일은행·부산은행·카카오뱅크·소시에테제네랄 등 7개 은행을 평가한다. 비공개로 이뤄지는 은행권 조사가 끝나면 다른 금융권도 조사받을 수 있다. 조사 결과는 내년 4월께 발표한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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