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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대기업 후원에만 의존 않고…3만 벤처와 함께 공공성 키울 것

[서경이 만난 사람]

재정자립 위해 법인 회원 넓히고 유료회원 10만명 확보

공연 투자 펀드 조성…예술가-단체-극장 '윈윈 모델' 구축

해외공연장과 협력 클래식 한류 전파 '문화 외교' 선봉장으로





“기존의 예술 후원과 기부에 ‘시니어’ 세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새롭게 등장한 ‘주니어’ 세대가 이끌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닙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경제 규모로는 세계 12위인 국가죠. 벤처기업의 수는 3만개가 넘는데 그 중 매출 1,000억원 이상은 600곳에 육박합니다. 이들 기업을 이끄는 50~60대는 한때 ‘386세대’로 불렸던 이들로 젊은 시절에 문화를 향유한 경험이 있는 세대입니다. 그들이 예술의전당을 후원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술계가 그분들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과거에 예술후원이라 하면 대기업만 하는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취임 100일을 넘긴 유인택(64) 예술의전당 사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사장실에서 본지와 만나 “크라우드펀딩의 시대이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면서도 1만~2만원씩 기부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니 이제 그들을 우리 예술의전당 후원세력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면서 “이것이 예술의전당뿐만 아니라 예술인과 예술단체 등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공연시설인 예술의전당의 재정자립도는 75%에 이른다. 다른 공공기관 공연시설의 평균 자립도 30%대나 정부 소속기관인 공연시설의 재정자립도 18%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지난해 예산 447억원 중 국고지원금이 119억원(25%)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대관과 임대사업, 주차료 등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공공재정 부문이 취약하면 예술성 사업은 줄이고 수익성에만 치중하는 단점이 드러난다. 기획보다는 대관 행사에 쏠리고 대관료와 임대료 인상, 티켓 가격 상승, 시설투자 부족 등을 피할 수 없다.

유 사장의 취임 일성이 “임기 3년 안에 국고보조율 비중을 50%로 높이겠다”였던 이유다. 공익성 구현을 위한 재정 안정을 목표로 삼되 민간 재원 확보를 위한 자체 노력으로 중소벤처기업까지 법인회원 가입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국가대표 예술극장이자 전국 250여 개 공공극장의 대표격인 예술의전당의 변화가 “공공성 가진 극장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유 사장은 “후원·기부를 대기업에 의존하던 시절에는 당위성을 내세워 (예술계를) 도와줘야 한다고 했었으나 이제는 설득하는 논리와 후원자에 대한 예우의 문화가 퍼져야 한다”면서 “요즘 부자의 정의는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얼마나 썼는지’로 평가하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의미 있게 돈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문화콘텐츠 벤처캐피털인 ‘아시아문화기술투자’를 설립한 바 있는 유 사장은 “매출 100억원 이상의 기업만 돼도 연간 100만원 기부하는 것이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서 “십시일반(十匙一飯)을 경험해 봤고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연간 10만원씩 납부하는 유료 개인회원인 ‘골드회원’을 오는 2022년 10만명까지 확보하겠다는 ‘공약’도 밝혔다. 10만원 유료회원이 10만명이면 연간 100억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 사장은 지난 1989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 ‘오!꿈의 나라’를 사전심의 없이 상영했다가 피소된 후 영화 사전심의에 대한 위헌 판결을 이끌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후 영화제작자로 변신해 ‘너에게 나를 보낸다’ ‘화려한 휴가’ ‘과속스캔들’ ‘쌍화점’ 등의 흥행 영화에 투자했다. 뮤지컬로 발을 넓혀서는 산학협력 방식의 창작 뮤지컬 ‘구름빵’, 어린이 한자교육 뮤지컬 ‘마법천자문’을 기획했다. 명분 못지않게 수익과 흥행, 투자 감각에 뛰어나다는 것을 삶에서 이미 입증했다. 이는 기관의 새로운 투자 모델을 구상하는 원동력이 됐다.

유 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300억원 규모의 공연 투자펀드를 조성할 계획인데 예술의전당도 일부를 출자해 주주가 되려 한다”면서 “영화 배급사가 공급받기 위해 투자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원리로 그 펀드가 좋은 작품을 유도해 우리가 좋은 작품을 유치하면 예술가·예술단체도 이롭고 극장도 유익해 모두가 발전하는 선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에게는 “공연하는 사람들에게는 4대보험 가입 여부가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 공연이 열리는 무대 그 자체가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발레, 뮤지컬 등 발굴된 문화 콘텐츠의 다채로운 유통방식도 제안했다. 그는 “건물만 지었을 뿐 내부 프로그램이 부실한 지방 문화예술회관의 가동률이 30% 미만”이라는 점을 짚으며 “국가대표 맏형으로 예술의전당이 앞장서 지방 유통을 이끌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해외 진출’까지 구상하며 내부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유 사장은 미국 팝의 영향을 받았으나 한글 가사에 고유한 정서를 가미해 세계적으로 성공한 방탄소년단(BTS), 영화 ‘기생충’으로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 등의 사례를 들어 “클래식 공연을 미국과 유럽의 원형에 집착하는 것 때문에 혁신·발전이 막히는 것 아닌지 반성적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400여년 전 탄생한 정통 오페라는 이탈리아 젊은이들도 잘 안 보는 장르이고 우리 젊은이들도 3~4시간 완창하는 판소리를 보는 게 어려운 만큼 오페라는 좀 더 즐기기 쉬운 뮤지컬로, 판소리는 이야기 구성을 넣은 창극으로 돌파구를 찾았다는 점에 주목해 ‘현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으뜸이던 영화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아시아 1위국이 됐고 한국어 뮤지컬이 중국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한 반면 오페라와 발레는 상대적으로 자생력이 낮은 것에 대해 유 사장은 “창작 오페라와 창작 발레가 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선 국내의 ‘미래 관객 개발’을 위해 서울시교육청과 협의해 초·중·고생을 위한 클래식 입문용 오페라와 발레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해외 진출을 위한 외국 기관과의 협력 기반도 다져가고 있다. 유 사장은 지난달 20일 중국 최대규모의 공연장 국가대극원이 주최한 ‘2019 베이징 공연예술 포럼’에 참석해 뉴욕의 링컨센터, 카네기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의 바비칸센터, 로열오페라하우스, 파리 국립오페라단, 도쿄 신국립극장 등 세계 29개 공연장 및 공연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글로벌 극장 경영 트렌드’ 등을 주제로 교류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귀국 직후 본지와 인터뷰한 유 사장은 “예술의전당이 배급·유통의 플랫폼이 돼 국가대극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면서 “우리 국립오페라단이나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중국 쪽에 제안할 수 있고 우리 교향악 축제 때 베이징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식의 교류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공연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교육적 기반이 마련돼야 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인구 15억명의 중국에 “이제야 때가 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사장은 “중국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같은 규모와 시설을 갖춘 공연장이 대도시뿐만 아니라 2선 도시까지 300개 이상 500개 정도로 집계되는데 공연장만 일단 지었을 뿐 콘텐츠가 너무나 부족해 우리 예술단체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클래식 분야에서의 서양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일본 등과 연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클래식 공연의 한류(韓流)를 내다봤다. “서양음악의 본류인 유럽과 미국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일본과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나아가 동남아와 개발도상국에 클래식 한류를 전파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의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 영국 런던의 로열오페라하우스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극장으로, 세계 경제 12위의 우리 국민들이 어디서든 자부심 가질 예술의전당을 만들겠습니다. 임기는 3년이지만 30년을 내다봅니다. 한류의 위상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클래식 공연과 미술·서예 등 순수예술 다방면을 책임 있게 보여주는 복합공간이 되도록, 국가대표 공공극장으로 예술교류와 문화외교까지 도맡는 예술의전당이 되도록 이끌겠습니다.”
/대담=최형욱 문화레저부장 choihuk@sedaily.com

/정리=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55년 충북 제천 출생 △1975년 경복고 졸업 △1983년 서울대 제약학과 졸업 △1984~1985년 극단연우무대 사무국장 △1987~1989년 예술극장 한마당 대표 △1998년 영화사 기획시대 대표 △1999~2002년 제3대 한국영화작가협회 회장 △2002년 한국문화사업포럼 공동대표 △2008년 아시아문화기술투자 공동대표 △2012~2014년 세종문화회관 제17대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2012년 동양예술극장 대표 △2019년 4월~ 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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