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21일 참의원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아베 정권이 선거 이후에도 이른바 ‘한국 때리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강조해 정치적 구심력을 강화하고 개헌에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경제보복을 비롯한 후속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NHK방송이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 집권 여당인 자민·공명당은 67~77석을 확보해 참의원 전체 의석의 절반(124석)에 대해 실시하는 이번 선거에서 과반인 63석 이상을 얻을 것이 확실시된다. 최종 선거 결과는 22일 새벽에 확정될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내놓은 수출규제 강화를 노골적으로 활용해왔다. 일각에서는 선거 후 아베 총리의 공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아베 총리가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반한(反韓) 감정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며 선거 후에도 대한(對韓)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민영방송 아사히TV의 참의원 선거 개표방송에 출연해 ‘한국에 정상회담을 요청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국과 일본이 전후 태세를 만들면서 서로 협력하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구축하자는 협정”이라며 “이런 협정에 대해 위반하는 대응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참의원선거가 한일관계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일본은 현재 한일 갈등의 핵심이 강제징용 배상판결이라고 거듭 강조한 만큼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없는 한 강경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민주·박우인기자 parkmj@sedaily.com
연금 불안·소비세 인상에도…‘韓 때리기’로 지지층 결집
[日 참의원 선거 연립여당 승리]
내각지지율 한때 40%대 추락
민생 대신 외교 승부수로 반등
6년반 장기집권 중간평가 성격
아베, 사상 최장기 총리 확실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년 반 동안 이어온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이번 참의원선거에서 자신이 목표했던 과반 확보 달성에 성공한 것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으로 지지층 결집 효과를 이끌어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금의 노후보장과 소비세 인상 등 민생 문제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던 아베 총리가 지난달부터 ‘한국 때리기’에 주력하면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정국 주도권의 풍향계 역할을 하는 참의원선거에서 과반 확보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한국과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며 개헌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1일 총 124명(선거구 74명, 비례대표 50명)의 참의원을 뽑는 선거에는 총 370명이 입후보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양원제를 채택한 일본에서 참의원은 상원에 해당하며 6년 임기로 3년마다 절반을 바꾼다.
NHK방송은 이날 선거 종료 직후 출구조사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이번 선거 대상인 124석 가운데 67~77석을 획득해 전체 과반 확보에 필요한 63석 이상을 무난히 확보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보도했다. 앞서 자민당 총재인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의 승패 기준을 전체 참의원 의석의 절반 확보를 위한 53석 이상이라는 보수적인 틀로 내걸었던 만큼 목표는 여유 있게 달성한 셈이다. 여당의 승리가 확정되면 아베 총리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오는 11월 가쓰라 다로(2,886일) 전 총리의 재임기간을 넘어서 헌정 사상 최장기 총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까지 연금의 노후보장 문제와 소비세 인상 등으로 위기를 겪어왔다. 지난달 일본 금융청이 은퇴자가 연금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일본 전역은 정부의 공적연금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야권의 맹공 속에 자민당 내에서도 2007년 ‘사라진 연금’ 사건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급부상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5,000만건에 달하는 국민연금 납부기록을 분실해 공분을 샀는데 이는 선거 참패와 아베 총리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또 정부가 10월부터 소비세율을 현행 8%에서 10%로 올리는 인상안을 지난달 확정한 것도 민심을 악화시켰다. 소비세는 법인세·소득세와 달리 소득에 관계없이 동일한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내각 지지율이 40%대로 뒷걸음질치며 한때 선거 패배 가능성까지 제기된 아베 총리는 한일 갈등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며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실제로 선거 전날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열린 아베 총리의 마지막 선거유세 연설장에 모인 지지세력 중 대다수는 민생 문제보다 중국이나 한국 문제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였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 일본 힘내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연설을 듣던 한 남성은 “한국이나 중국에 확실하게 할 말을 해주니까 믿음직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선거의 최대 화두는 집권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추진 세력이 개헌 발의선인 전체 참의원 의석의 3분의2(164석)를 확보할지 여부였다. 실제 아베 총리는 이번 참의원선거를 자위대 근거조항을 헌법에 담는 개헌 추진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로 규정하고 개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선거운동에 집중해왔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임기 중 정치적 숙원인 개헌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현재 비개선(임기가 3년 남은 의석) 79석을 가진 개헌지지 세력이 이번 선거에 걸린 의석 중 85석 이상을 가져와야 한다. 이날 발표된 NHK 출구조사에서는 집권 여당과 야당인 일본유신회를 포함한 개헌지지 세력이 76~88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만일 22일 새벽 발표될 최종개표 결과 아베 총리가 동조 세력과 개헌 발의선 확보에 실패할 경우 과반 의석을 확보한 승리임에도 아베 총리는 사실상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3년 후 치러질 다음 참의원선거 전인 2021년 9월 끝나기 때문에 임기 중 개헌 추진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을 비롯한 개헌세력이 개헌 발의 의석 유지에 실패하면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3연임 제한’ 당규를 고쳐 장기집권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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