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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반일을 국가정체성 기초로 삼는 것은 시대정신에 어긋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미래 국익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정부 입장 먼저 명확히 밝혀야

-사태 더 커지기전에 국제 중재위 등 한일갈등 퇴로 찾아야

-사드는 우리의 자위권과 관련...절대 중국에 양보해선 안돼

-北 핵생산 지속되는데 북핵, 남북 관계 진전됐다 볼 수 없어

-정부, 남북 대화만 하면 평화 유지될 수 있다 환상 버려야

-북한에 핵포기 없다면 모든 것 잃을 수 있다고 쓴 소리해야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일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서 “국제적으로 더 큰 망신을 당하기 전에 한일관계의 퇴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남북대화만 유지하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북한에 분명한 핵 포기가 없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쓴소리하는 설득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일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서 “국제적으로 더 큰 망신을 당하기 전에 한일관계의 퇴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남북대화만 유지하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북한에 분명한 핵 포기가 없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쓴소리하는 설득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한일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서 “국제적으로 더 큰 망신을 당하기 전에 한일관계의 퇴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남북대화만 유지하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북한에 분명한 핵 포기가 없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쓴소리하는 설득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지금 한반도는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 일본의 경제보복과 러시아·중국 군용기의 독도 무력시위까지, 안보와 경제를 흔드는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나라가 초유의 다층적 위기상황인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외교안보정책을 되짚어보고 격랑을 헤쳐나갈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외교안보통으로 꼽히지만 전시작전권 전환을 주장하며 때로는 보수 안보론자와 각을 세우기도 한다. 천 전 수석은 “우리나라와 같은 미들 파워가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와 미래의 국익을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지금과 같은 격랑 속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국가와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의 난제는 해결해야지만 그것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희생하려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반일을 국가 정체성의 기초로 삼고 마치 종교처럼 여기는 것은 시대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외교안보가 난맥상에 빠졌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이 원인인가.

△정권의 정치적 정통성을 반일에서 찾으려는 현 정부의 시대착오적 망상에서 비롯됐다. 국가 안보전략에서 본다면 한국과 일본만큼 이해관계의 공통성이 넓은 나라가 없는데 마치 대한민국이 반일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처럼 반일 가치를 높여놓았다.

-일본이 경제적 보복에 나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난해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한 후 8개월이 지나도록 정부는 아무 입장도 내지 않고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만 했다. 정부가 1965년에 체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해 침묵하는 동안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강제압류 조치가 이뤄졌다. 정부가 무성의하게 발뺌하니 일본은 신뢰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54년 전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로 타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해결했으면 그 문제는 이제 국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양국 관계로 끌고 가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한 나라의 국제적 신뢰와 명성은 얻기는 힘들지만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경제적 손실보다 더 큰 손실이다.

-정부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나.

△대일특사를 보내고, 미국의 중재를 기대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먼저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지 정하고 특사를 보내야 한다. 한일 청구권협정 체결 후 우리 정부가 취한 입장이 우선하느냐, 대법원의 판결이 우선하느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먼저 명확히 정하기 전에는 어떤 해결책도 나올 수 없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유효하며 그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는 정부의 입장은 현재에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만약 대법원의 판결로 정부 입장이 바뀐다면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엔나협약 27조에는 조약 불이행을 정당화하는 방법으로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가입한 협약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면 일본 기업을 대신해 우리 정부가 보상하는 게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입장 때문에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제3국 중재위원회에 넘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중재위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중재위에 가면 우리의 사법제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국제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망신을 피하려면 이 선에서 빨리 퇴로를 찾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대일 압박수단으로 거론하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카드로 꺼내는 것은 우리 발등을 찍는 일이다. 한일관계를 푸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것이다. 정녕 불필요할 뿐 아니라 바보 같은 일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것이 훨씬 더 많다.

-중국이 올해 국방백서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한국에 대한 압박을 노골화하는 것 아닌가.

△중국이 사드를 들먹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위권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런 심각한 주권 위협에 대해 중국과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외교안보전략의 실패로 봐야 한다. 어느 정부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일이다.

-북핵 문제와 북미협상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는 게 아닌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 번 만났지만 북한은 핵을 줄이지 않고 되레 늘리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진전이라고 볼 수 있나. 북한이 당장 핵실험은 하지 않아 우리의 체감 위협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착각하고 있다.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북한이 절대 핵 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협상할 필요는 없다. 진짜 북한이 핵을 내놓을지 아닐지는 앞으로 로드맵 협상과 검증방식 협상 과정에서 얼마든 확인할 수 있다.



-북핵 협상 과정에서 방점을 둬야 하는 게 무엇인가.

△비핵화의 최종 종착점, 엔드 스테이트가 어디냐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합의는 최종 단계까지 분명하게 명시돼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미사일을 내놓으면 미국이 무엇을 줄지 결정하고 북한의 핵물질과 생산시설의 영구 불능화나 폐기에 미국은 어떤 상응조치를 연결할지를 정하는 것이 로드맵이다. 먼저 이 로드맵을 명확히 하고 검증 과정까지도 확실히 작성해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서 북한에 보상을 해주는 게 필요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만약 북한에 신뢰가 뒷받침된다면 신용거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사례나 현재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과 북한 간에 외상 거래는 불가능하다. 다만 신뢰가 없다고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미국과 구소련 간에 이뤄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중거리핵전력제한협정(INF) 등 중요 군축조약을 보면 모두 미소 간 신뢰 수준이 가장 낮을 때 합의된 것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지만 양측 모두 얻을 것이 있기에 서명이 된 것이다.

-현 정부가 한미일 공조를 과소평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동맹은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골병들어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을 우리 자유를 제약하는 족쇄로 여기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지금은 한미동맹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미국 대통령이 존재하고 있고 우리 정부 내에서는 한미동맹을 자주권 침해로 보는 이들이 외교안보정책 결정에서 중요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신뢰 수준은 최악의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한미동맹이 다소 약해져도 된다는 시각이 있는데….

△북한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니라고 현 정부는 생각한다. 오히려 북핵 미사일을 빌미로 북한을 공격하려는 미국이 우리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핵이 있는 북한과도 대화만 하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한미동맹이 아니라 남북대화가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하고 있는데 어떻게 한미동맹이 잘되기를 바라겠나.

-현재의 외교안보라인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필요한 일인가.

△현 외교안보팀은 청와대의 정책 실패를 대신 책임지기 위한 곳일 뿐이다. 새롭게 교체한들 새 팀이 소신대로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북핵 협상이 난항에 빠지면 과거 2017년과 같은 한반도 위기론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위기상황으로 가지 않기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외교적으로 안 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타격을 다시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 극단적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보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내놓지 않고 내년 미국 대선까지 질질 끌고 가거나 대선을 앞두고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에 나서면 트럼프에게 군사 공격의 빌미를 주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막은 것을 자기 공으로 삼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인데 한순간 사기꾼이 돼버린다면 무력사용 외에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에 핵 폐기와 동결의 진전이 없이 핵물질 만들기를 고집하면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고 경고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미국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쓴소리를 해야 한다. 듣기 좋은 얘기만 하니 북한이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설득자가 돼야 한다는 것인가.

△현재 미국은 물론 북한과도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촉진자·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나. 북한은 영변만 내놓고 제재를 해제해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핵을 계속 만들겠다는 것이며 사기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핵을 계속 생산하겠다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것 모두를 잃을 수 있다고 북한에 분명히 말해야 한다. 과거 북핵 6자회담에서 북측 대표였던 김계관 전 외무성 제1부상에게 ‘핵을 안고서 어떻게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있느냐, 핵을 내놓고 미국에 원하는 것을 더 내놓으라고 얘기해야 맞는 것’이라고 하니 김 부상이 북한에 가서 내 말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던지 그저 허허 웃고 말더라. /홍병문 논설위원 hbm@sedaily.com

He is…

195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지난 1977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후 국제기구정책관과 정책총괄과장, 주유엔 대표부 차석대사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2008년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고 이후 영국 대사를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2차관을 거쳐 2010~2013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2013년부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을 맡아 외교안보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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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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