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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다툼에 동네북된 한반도...얕보지 않게 결기 보여야"

[지금 한국은 안보·경제 다층 위기]

<상> 긴급진단-외교안보

中러, 영공침범·공동 비행 훈련은 美 겨냥한 합동 작전

외교적 갈등 수준이었던 독도문제도 분쟁화할 가능성

정부 미온적 대응은 잘못...재발방지 위해 강경입장 필요





나폴레옹은 지도를 보면 그 나라의 대외정책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지도상에서 한국이 위치한 지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국의 대외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대외정책, 즉 외교가 다층 위기 속에서 방향성을 잃어서다.

사방에서 한국 외교를 짓누르는 난제들과 해법에 대해 외교·안보 전문가 10명의 의견을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전통적 핵심 관계국인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과의 관계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던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기존 틀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북아를 넘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외교 이슈들이 서로 물고 물리며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 외교는 북한에만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어 ‘원 이슈 컨트리(one issue country)’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라는 게 이들의 우려다. 과도한 대북 몰입 때문에 국제사회 변화의 흐름에서 자꾸 뒤처진다는 것이다. 박자를 놓치다 보니 주변국을 향해 제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뒤늦게 눈치를 보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과도한 북한 몰입에서 빠져나와 정세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북한 모두 자국 이익을 우선하며 국방력을 키우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즉 한반도 평화가 궁극의 지향점이기는 하나 현존하는 위협 요인에 대한 대응력도 함께 키워가야 동맹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고 동시에 주변국이 한국을 쉽게 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자주 국가의 결기를 보여줄 수 있는 힘을 미리 키우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제언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지난 23일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영공 침범을 동북아 외교 및 안보지형의 변화를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관계가 예전 같지 않으니 자신들의 힘을 어디까지 투사할 수 있을지 테스트해본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세력 공백을 노렸고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지지난해,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미일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비해 함께 무력을 과시하면서 전략자산을 들여오고는 했다”며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그게 약화하다 보니 중국과 러시아가 그 공백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사건을 미중 패권 경쟁과 연계해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일관계가 상당히 안 좋아졌다”며 “아마도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매우 약한 연결고리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했던 것도 미국의 중국 때리기를 둔화시키려는 목적이 컸다”면서 한반도가 미중 갈등에 끼여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한미일 고리가 약해지니까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과시하면서 한미일의 고리에서 이탈하라고 한국을 압박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남 교수는 “중러의 공동 비행 훈련은 미국을 겨냥한 하나의 합동 작전”이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한국이 그간 독도 문제 등에 있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한미동맹이 있었기 때문인데 동맹이 느슨해지면 영토 분쟁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까지는 외교적 갈등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분쟁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한국과 일본이 무역전쟁을 하면서 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파기한다고 하니 한미일 삼각 협력에 균열을 가하면서 한번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독도 주변은) 미국도 개입하기 어려운 민감한 영토”라며 “중국은 올 필요도 없는 지역인데 미일의 반응을 보려는 게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미중 갈등이 확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일관계가 휘청이면서 중러의 도발성 움직임을 야기했고 이에 결국 기존 역학 구도 전체가 일대 변화에 휩싸여버렸다는 분석들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반도를 무대로 해 중국이 미국의 패권 경쟁에 나서면서 미국의 영향력에 맞대응하겠다는 그런 전략”이라며 “중러는 북한에 후원을 약속했고 미국이 비핵화에 상응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중러가 보장하겠다는 무력시위로도 해석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개입하는, 즉 일종의 명분을 중러가 확보하려는 것”이라며 “그것은 한반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에게 중러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무단진입 및 러시아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도 평가를 요청했다. 대부분 한국 정부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신 센터장은 “카디즈는 국제법 위반이 아니지만 영공 침범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러시아에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주권 침해이니 물고 늘어져야 재발이 안 된다. 우리 정부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느라 지금 미온적으로 대응하는데 그렇게 했다가는 나중에 반드시 또 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센터장은 “러시아에 계속 항의를 하고, 고위급에서도 나서 유엔으로 문제를 끌고 간다고 하고, 유엔에서 브리핑을 하는 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강자의 에너지를 소진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영공 침해를 통해 얻는 군사적 이익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외교적 손실이 더 크다는 것을 각인시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도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어야 했다”며 “특히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영공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연합사 사령부에서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계속 미지근하게 대응하게 되면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만 키워주는 게 된다”며 “묵묵하게 있기만 한다면 한미동맹이 무엇인지, 중러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한국은 어떤 입장으로 보는지, 한국은 한국의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신 전 차장은 결기의 타이밍을 지적했다. 신 전 차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거북선 식 결기는 옳지 않다. 결기는 제때 필요할 때 내는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에 강경한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정전협정 이후 첫 영공 침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정부가 적시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못 낸 이유는 뭘까. 군사적으로는 곧바로 우리 전투기가 출격, 360발의 경고 사격을 하는 등 즉각 대응을 했지만 청와대는 러시아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을 끌어내기는커녕 되레 우리 조종사가 위협을 했다는 적반하장의 변명만 들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국방부와 다른 브리핑을 내는 등 안보와 직결된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정부가 너무 북한만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청와대의 관심이 온통 북한 문제에만 쏠려 있으니 다른 나라에는 그만큼 관심을 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북한은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계속 쏘면서 남측과의 군사 합의마저 위반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 역시 같은 부분을 우려했다. 신 센터장은 “외교 환경이 과거보다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흐름을 고려해 관련 정책을 세워야 하는데 ‘북한 중심주의’로 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 문제를 너무 중요시하다 보니 주변국과의 외교는 너무 소홀히 했다”며 “중러와도 사이가 좋아진 게 아니고 한미일 협력도 잘 안 되고 거의 외교적 고립 상황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 역시 동맹 소홀과 북한 과잉 몰입을 지적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와 중국은 계속해서 군사적 영역을 넓히려 할 것”이라며 “특히 남방으로 내려오려 할 건데 이를 막는 힘이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동맹 차원에서 상대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러시아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교·안보 정책이 북한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北에 치우친 외교정책 한계…‘원 이슈 컨트리’ 탈피를”

美·中·日 러에 최고 전문가 파견해 협력 관계 강화

러·中, 남으로 군사영역 확장…한미동맹으로 막아야

日과 마찰, 韓 입장서만 정당성 찾지말고 관계개선을

이들은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성을 고려하면 한국이 지금이라도 빨리 지나친 북한 몰입에서 벗어나 주변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러의 도발뿐 아니라 일본과의 갈등, 북한의 떼쓰기 식 위협 등 이 모든 게 대북 정책 과잉의 부작용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무역전쟁에서 시작한 미중의 갈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조금 있으면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 문제까지 갈등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이슈를 계속 찾고 있다 보니 미중 갈등의 흐름에 따라 동북아 전체의 외교 환경이 계속 난해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 교수는 “미중관계가 협력이 잘돼야 한반도 내에서 남북과 북미가 선순환되는데 지금으로서는 녹록하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양 교수는 “그래도 아직은 북미 정상 간 신뢰가 있기 때문에 상황 호전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동북아 전체의 외교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의를 해야 한다”며 “미국에 대해 중러가 연합해 도전하는 구도도 있고 그 변화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전통적인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러 대 미국의 대치는 계속될 것”이라며 “북한은 그 틈을 활용하려 할 것이고 기존의 접근으로는 안 된다. 주변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중국·러시아 등에 최고의 외교 전문가를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신 센터장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닌 최고의 중국 전문가를 보내고 러시아와도 성과가 있는 사업을 해 러시아가 한국을 존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기준으로만 정당한지 따질 게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를 바꿀 답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미일 관계 복원의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문 센터장은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시도 노력을 계속해야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한 대비도 확고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북미관계를 보면 미국은 북한의 요구를 당장 들어줄 수 없다”며 “긴장 국면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잠수함 시찰, 미사일 발사 현지 지도 등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한미일 동맹 약화를 촉발한 주요 사건 중 하나인 한일 문제도 이성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한미일 동맹의 추가 악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 본부장은 “한일관계의 경우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며 “일본을 굴복시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냉정하게 직시하면서도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국 경제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분리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일본의 경제제재에 강력하게 맞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보다는 일본과의 통상 전쟁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며 대일 의존도를 줄여가야 한다”며 “한편으로 대일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을 하면서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평화 번영을 위해서는 강한 국방력과 철저한 안보 태세가 필수라는 점도 강조했다. 대북 억지력이나 중러의 도발 방지 차원뿐 아니라 동맹 결속을 위해서도 국방력을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교수는 “최근 미군의 유엔사 전력 강화 등을 보면 우리가 슬슬 홀로서기를 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를 위해서는 국방력을 강하는 게 필요하다”며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사일 사거리 등 미국에서 받아내야 할 것은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주 국방력 강화는 한미 간의 동맹 약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가 미국의 동맹으로서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국방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도 “동맹을 강화하는 가운데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동맹 훼손을 각오하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동북아에서 우리가 홀로 잘 사는 것은 어렵고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효율적”이라며 “미국에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력은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 정도의 국력에 대해 “미국이 ‘한국이 다른 진영으로 가면 큰일나겠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의 군사적 덩치를 가져야 한다. 이런 국가가 미국을 돕지 않으면 손해라고 할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센터장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 안보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우리 힘만으로 중러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일본과의 갈등을 빨리 봉합하고 한미 억지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미일 안보 협력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동맹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비대칭 전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력한 미사일 하나가 있고 그것 때문에 한국을 상대할 때 손해를 크게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며 “한국형 비대칭 전력을 구축하는 노력을 하고 전반적인 힘의 균형은 동맹을 통해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센터장은 “첨단전력, 즉 비대칭 전력 하나 정도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어놓는 게 한국에 가장 적합한 안보 전략이라고 본다”며 “한국의 특정 전력 하나만큼은 위협이 된다, 즉 겁을 줄 수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영현·김인엽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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