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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토리노의 수의

1933년 마지막 대중 공개

감광판에 찍힌 토리노의 수의. /위키피디아




1933년 9월24일 이탈리아 토리노. 세계의 가톨릭 신도들이 몰려들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죽은 예수의 육신을 감쌌던 성의(聖衣)를 보기 위해서다. 10월15일까지 계속된 성물 공개는 대중 앞에 직접 성물을 보여준 마지막 행사였다. 성의는 이후에 더 이상 직접 공개되지 않고 전시돼왔다. 공개를 추진한 주역은 교황 비오 11세. 대속년 맞이 성물 공개의 뜻을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쌍수를 들어 반겼다. 국민적 통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성의 공개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진위 논란에 불을 붙였다. 예수의 성의가 처음 발견된 시기는 1353년. 프랑스 릴레이 지방의 한 명문가에서 발견돼 1453년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에 기증되고 1588년 토리노로 옮겨졌다. 일반에게 공개된 1898년 성의를 촬영한 한 사진사는 현상 작업에서 놀라운 사실을 찾아냈다. 현상액에서 꺼내는 감광판을 꺼내는 순간, 흐릿하지만 예수의 얼굴이 드러났다. ‘성의에 비치는 예수의 형상’ 소식은 곧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퍼졌다. ‘토리노에 가서 성의를 보고 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까지 생겼다. 축복과 감동으로 신심이 깊어진다는 얘기다.



마지막 대중 공개 이후 믿음뿐 아니라 의심도 커졌다. 과학적 증명 경쟁도 불붙었다. 탄소동위원소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한 결과 성의가 제작된 시기는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이며 터키 지방의 직물이라는 주장에서 성의에 남겨진 핏자국 흔적의 절반 이상이 가짜라는 추론이 나왔다. 이탈리아 태생 예술가의 ‘걸작’이라는 추정도 있다. 종교가 아니라 과학을 동원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탄소 측정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며 성의에 나타난 고대 유대 지방의 동전 형상에서 진품이 분명하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단정할 수 없으나 확실한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믿는 습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1915년 소설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라쇼몽(羅生門)’에서는 등장인물들은 물론 귀신까지도 동일한 살인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 유리하게 진술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확증편향도 이와 다르지 않다. 둘째는 진위 논란을 떠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말을 남겼다. ‘토리노의 수의에는 정의롭지 않게 고통과 박해를 당하는 세상 모든 이들의 얼굴이 들어 있습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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