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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월간 '샘터'

‘요즘 집에 들어가면 동생들이 언니 몸에서 도나스 냄새가 난다고 한다. 어디서 맛있는 도나스를 혼자만 먹고 사오지 않았느냐고, 언니는 얌체라고 빈정거린다. (중략) 2년 동안 라면 공장에서 일한 탓으로 몸에 배어든 라면 냄새라는 것을 동생들이 알면 웃을까?’

1970년 4월 월간 ‘샘터’의 창간호에 실린 한 여성 근로자의 글이다. 샘터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문고판형으로 창간됐는데 우암 김재순(1923~2016) 전 국회의장이 1965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당시 기능공들을 만났던 게 계기가 됐다. 우암은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못했다는 기능공들의 사정을 듣고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자는 결심으로 샘터를 창간했다고 한다. 당시 우암이 쓴 발간사에는 ‘이 땅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의 산업현장으로 대이동을 하던 시절, 샘터는 이들에게 고향의 샘물처럼 시원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당시 권당 가격은 100원.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우암의 당부를 지켜 최근까지도 권당 가격이 3,500원이다.

월간 ‘샘터’ 창간호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표방한 만큼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촌부는 물론 스타 필자들이 맑은 글을 길어 샘터에 쏟아냈다. 법정 스님은 ‘고사순례’와 ‘산방한담’을 연재했으며 시인인 이해인 수녀 역시 ‘꽃삽’ ‘흰구름 러브레터’ 등 다양한 칼럼을 썼다. 특히 고 최인호 작가는 1975년부터 35년간 연작소설 ‘가족’을 선보여 국내 잡지사상 최장기 연재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며 한때 50만부까지 발행했던 샘터가 출판시장 침체로 2만부도 팔리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우암의 막내아들로 1995년부터 샘터사를 이끌었던 김성구 대표는 상속세 부담에다 적자 누적으로 2년 전 대학로 샘터 사옥을 매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옥 매각에도 경영난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올 12월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 내년 창간 50주년을 앞두고 사실상 폐간이나 마찬가지라 출판계는 물론 샘터를 아꼈던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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