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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시론] 변해야 할 때 변해야 한다

박수용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리브라' 맞서 中 디지털화폐 추진

글로벌 주도권 경쟁 불붙는데

규제묶인 韓 '강국→보통국가' 위기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 이후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말들이 돈다. 하나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실물 세상, 또 하나는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세상이다. 예전만 해도 디지털 세상은 실물 세상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서 디지털 세상이 도리어 실물 세상에서의 일들을 주도하고,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하면서 디지털 세상에서의 경쟁력이 실물 기업 또는 개인의 경쟁력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하는 시대가 됐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헤르만 지몬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 모든 것이 디지털화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디지털화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디지털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다면 화폐가 디지털화될 수 없는 이유가 있을까.

최근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암호화폐 혹은 가상 화폐란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화폐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 초기에는 소위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 권력기반의 화폐 발행에 저항하는 IT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개인들 간에 통용되는 형태였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2017년부터 시작해 2018년 1·4분기까지 지속했던 암호화폐 열풍의 주역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2019년에 들어와 페이스북은 우버·비자 등 다국적 기업들과의 연대를 기반으로 한 ‘리브라’라는 암호화폐가 등장했다. 전 세계 23억명의 회원을 확보한 페이스북이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이의 지급 보증을 통해 금융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과연 이 서비스가 금융의 혜택을 받지 못한 제3 세계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될 것인가 하는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화폐 발행을 국가의 고유 권한으로 생각하고 자국의 화폐를 보호하려는 미국을 위시한 여러 유럽연합(EU) 국가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위협이었다.



최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도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리브라 등장 이후 자국 금융 시스템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이 글로벌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가 리브라를 반대하는 사이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CBDC)를 발행해 시장을 선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리브라가 정상적으로 발행돼 국경을 초월한 결제 시스템이 적용될 경우, 각국 통화정책이나 금융 및 국제 통화 시스템은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이에 대응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중국의 이 같은 발표는 각국의 디지털 화폐 경쟁에 불을 붙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세계 최초로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서비스와 초고속정보통신망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디지털 강국 코리아라는 명칭을 얻을 정도로 한때 디지털 세상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규제개혁 부진과 선제적 정책 부재로 ‘디지털 보통국가’로 전락할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암호화폐 전면 금지 조치 이후 우리의 디지털 화폐 산업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을 넘어 디지털 화폐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모습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변화해야 할 때에 변화하지 못하면 현재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기반 기업들도 당당하게 디지털 화폐 기반의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하며 우리나라 은행들도 디지털 화폐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상품·서비스들을 만들어 디지털 세상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어가야 한다. 미래에 디지털화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디지털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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