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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리더가 쉬어야 조직이 산다

<113> 자율권한과 일하는 조직

전 연세대 교수

모든 것 챙기는 리더 둔 부하

배울 기회 적어 클 여력 없어

일방적인 명령 대신 소통하고

서로 협업하는 조직 만들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케스트라는 빈 필 하모니다.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만 마치 한 연주자가 하듯이 움직인다. 참으로 신기하다. 얼마나 연습을 했으면 저런 레벨에 올라갔을까. 아마도 지휘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연주하는 것이리라. 지휘자의 현란한 모습에 푹 빠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빈 필에는 상임 지휘자가 없다는 것이다. 객원 지휘자가 1년씩 바뀌고 있다. 지휘자도 지휘자지만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준이 탁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약과다. 지휘자가 아예 없는 악단을 들어 보았는가. 뉴욕에 있는 오르페우스 챔버 오케스트라가 바로 그렇다. 지휘자가 없기 때문에 곡 선정부터 연주에 이르기까지 단원들의 토론이 줄을 잇는다.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쳐서 모든 것이 진행된다. 상호존중과 토론의 과정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기여하게 된다. 자신이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과 경험을 가진 구성원은 더욱 헌신적으로 조직에 기여하기 마련이다.

리더가 죽어야 조직이 산다. 리더가 너무 나서는 조직들이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다 챙기는 리더들이 많다. 그 밑에 있는 부하들이 클 여력이 없다. 독자적으로 경험해봐야 배울 텐데, 그 배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 챙겨주면 자식들이 나약해진다. 누구누구의 자식으로만 불리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큰 나무 밑에는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햇빛을 받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회사 대표가 미디어에 지나치게 많이 나오면 그 회사 직원들은 사실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잘나가는 기업의 대표들을 조사해봤더니, 패튼 장군과 같이 호령하기보다는 의외로 조용한 리더들이 많았다. 배려하고 조그만 것을 소리 소문 없이 챙기는 리더들 말이다. 조셉 바다라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저서 ‘조용한 리더’에 담긴 연구 결과다.



재즈 공연을 보러 홍대 앞에 가본 적이 있다. 참 특이한 문화경험이었다. 클래식 공연과 달리 와인과 더불어 듣는 재즈는 별미다. 몸도 마음도 힐링되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에도 지휘자가 없다. 물론 작은 수의 인원으로 연주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어떻게 합주가 가능할까. 서로서로 상대방에 의존해 박자를 맞춘다. 한 사람이 치고 나가면서 연주하면 다른 연주자는 즉각 보조적 역할로 돌입한다. 그것이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리더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화음이 잘 맞고, 느슨하지만 확실한 질서가 있었다. 사물놀이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리더는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은 속도전으로 프랑스를 일방적으로 패퇴시켰다. 속도전의 핵심은 탱크다. 그런데 사실 프랑스 탱크가 독일제보다 성능이 더 좋았다. 프랑스는 왜 졌을까. 특이한 차이점 하나가 발견된다. 프랑스는 탱크 5대당 무전기를 하나씩 지급했다. 중앙집중식 명령하달 방식체제인 것이다. 무전기를 가진 탱크가 움직이는 대로 나머지 4대는 그냥 따라 움직인다. 자율권한이 제로다. 반면 독일 탱크는 무전기가 탱크마다 지급됐다. 5대가 뭉쳐 다니면서도 각자 독자적 움직임을 할 수 있었다. 자율권한이 있는 것이다. 열등한 탱크로도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고 토론하면서 움직이는 게 더 낫다. 일방적으로 명령하지 말고 각자 협력하도록 돕는 것이 리더다.



거미는 다리가 하나 잘리면 할 수 없이 7개로 움직여야 한다. 불가사리는 좀 다르다. 다리 하나가 잘리면 새로 난다. 놀라운 것은 그 잘려 나간 다리는 또 하나의 불가사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은가.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가. 거미 조직인가, 불가사리 조직인가. 기러기는 6,000㎞를 날아간다. V자를 그리면서 날아간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가장 앞에 서는 기러기는 어떤 기러기일까. 서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여러분의 조직은 기러기 조직이 맞는가.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가장 중요시한 철학 개념이 바로 자율성(autonomy)이다. 자율적 개인은 이성적 명령을 스스로에게 내리면서 실천해간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인간은 집단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리더는 모두가 자율적 명령에 따라서 서로 협업하면서 일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리더가 죽어야 조직이 산다. 정 죽기 힘들면 차라리 휴가라도 떠나라. 1년에 한 달씩, 아니면 5년에 2달씩 휴가를 떠나라. 갔다오면 회사가 더 잘돼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불안해하지 말라. 그것이 원래 정상이니까. 자신만 휴가를 즐길 것이 아니라 아예 모든 직원에게도 똑같은 휴가를 허가하라. 그러면 조직이 정말 잘될 것이다. 리더가 쉬어야 조직이 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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