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론] 한국경제, 절망과 희망 사이

구정모 대만·CTBC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

학계의 '퍼펙트 스톰' 경고에도

정부는 고용 양적 숫자에만 집착

韓, 한강의 기적 일군 잠재력 충분

시장친화정책으로 활력 불어넣길





필자는 한국에서 정년퇴임 이후 인연이 닿게 된 대만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한국과 대만은 최근 몇 년간 수출을 주도한 주체에 따라 명암이 갈렸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비슷한 나라다. 경제성장을 이뤄낸 뛰어난 교육열과 성실한 국민성, 제조업 위주의 수출 경제구조 등이 그렇다. 기존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저성장에 부딪힌 점, 안타깝게도 청년들이 자조적으로 ‘헬조선’ 혹은 ‘귀신섬’이라고 부르는 점도 닮았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두 나라는 정말 ‘헬’이고 ‘귀신섬’일까. 2019년처럼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될 수도 있다.

2019년 한국 경제를 되돌아보자. 절망적이다. 1·4분기부터 역성장을 기록하더니 코스피는 2007년 돌파했던 2,000선마저 내줬다. 외부에서는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수난에 직면했다. 내부적으로는 제조업이 받쳐주던 일부 지역 경제는 파탄 났다. 기업인들은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청년들에게 돌아갈 양질의 일자리는 사라졌다. 기업 이익은 줄고 경제 전망은 어두우니 투자가들은 주식시장을 떠나고 안전자산만 사들였다. 이는 예견됐던 일이다. 수많은 전문가가 경고했던 대로 반도체 호황이 끝나자 한국 경제는 침몰 직전이다.

학계에서는 2~3년 전부터 퍼펙트 스톰을 경고하며 보호무역주의, 국내 주요산업의 경쟁력 약화, 혁신 없는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 등을 지적해왔다. 정부는 알고도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혹은 대응할 의지가 없었거나.

그나마 있던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자. 재정을 쏟아부어 고용의 양적 숫자가 늘어난 점을 들며 경제정책을 자화자찬한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자 정권 초기에는 이전 정부 탓을 하더니 지금은 반도체 업황, 글로벌 무역분쟁 탓을 한다. 남 탓만을 하거나 아예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만 문제일까. 통화 당국은 2018년 말 이미 무역분쟁 격화 조짐이 나타났음에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따라 금리를 인상하더니, 반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연준 눈치를 보며 연거푸 금리를 내렸다. 심지어 정치인들은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거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토론하는 모습이 아닌 국회 입구에 드러눕거나 광장에 나와서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정부는 결국 혁신성장 구호를 꺼내 들었다. 두 스타트업을 예시로 살펴보자. 차량호출 스타트업인 A는 차별화된 서비스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정부와의 갈등 과정에서 대놓고 ‘A만 혁신기업이냐’며 저격을 당했다. 조만간 서비스가 금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온라인 환전 스타트업인 B는 시중은행보다 낮은 수수료와 편리한 예약 서비스로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규제로 인해 사업 확장에 한계를 느끼고 사업을 접었다.

2~3년 전 예견됐던 퍼펙트 스톰은 이미 현실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기존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지속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고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이웃 일본처럼 금리를 내려도, 돈을 풀어도 경기가 부양되지 않을 것이다.

운 좋게 반도체 특수가 다시 오지 않는 한, 글로벌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 한, 성장잠재력 제고가 이뤄지지 않는 한, 위의 말들은 현실이 될 것이다. 혁신성장이라는 구호를 외치는데 규제는 가만히 놓아둔다면 말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과감한 정책 전환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은 대한민국의 전문 분야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여전히 기적의 국가다. 기업들은 산업과 문화를 모두 선도하고 있다. 우리의 진정한 장점은 한강의 기적이나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과거가 아닌 앞으로 써내려갈 찬란한 미래와 잠재력에 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 정답을 알고 있다. 시장경제·혁신·수출이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를 확대해나갈 수 있다. 2020년에는 보다 강력한 시장친화적 정책으로의 대전환을 통해 한국 경제의 희망을 기대해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