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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유럽 항공의 태동

1908년 앙리 파르망, 1.5Km 비행 성공





1908년 1월13일 프랑스 파리 남서부 외곽 이시레몰리노. 육군 기지 안 항공클럽의 복엽기 한 대가 오전10시께 하늘로 올랐다. 높이 10~30m로 떠서 시속 40㎞ 안팎의 속도로 상공을 선회한 복엽기는 1분 28초가 지나 이륙지점에 내렸다. 비행 거리는 약 1,500여m. 조종사 앙리 파르망(당시 33세)은 유럽 최초로 ‘비행시간 1분과 거리 1㎞’라는 벽을 넘었다. 이시 항공클럽이 연병장을 공중에서 왕복하는 조종사에게 내걸었던 상금 5만프랑(요즘 가치 원화 약 11억원·노동자 임금 상승 기준)도 챙겼다.

프랑스는 물론 영국의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알렸다. 파르망의 국적이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트리뷴지의 파리 특파원인 부친을 따라 파리에서 장기간 체류했던 파르망의 당초 진로는 화가. 아들이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부모는 명문 미술학교에 보냈으나 파르망의 관심은 ‘기계와 속도’에 꽂혔다. 10대 후반과 20대 초 사이클 경주대회 챔피언에 오른 그는 세기말 무렵 관심을 자동차로 돌렸다. 형제들과 함께 모터 레이스에서도 이름을 날리던 그는 자동차 사고로 연달아 부상당하자 주종목을 또 바꿨다. 자동차보다 더 위험한 비행기로.



항공산업이 막 태동하던 당시 선두는 라이트 형제가 1903년 비행했던 미국. 첫 비행에서 약 260m를 비행한 라이트 형제는 1905년에는 35㎞가량 비행 기록을 세웠지만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유럽의 기술 제휴 제의나 공개 시험 비행 제의를 거부한 탓이다. 파르망 형제는 몸을 사리지 않았다. 라이트 형제가 상업화에 선뜻 나서지 않는 바람에 세계 최초의 상용 항공기 제작사가 된 브이장사의 비행기를 사들여 손도 많이 댔다. 꼬리 날개의 크기에서 비행기 전체의 무게와 균형까지 손댄 파르망은 잇따라 새로운 기록을 이어갔다.

1908년 3월 파르망은 3분 47초 동안 1.9㎞를 날았다. 10월 말에는 프랑스 북부 살롱에서 랭스까지 27㎞를 20분 걸려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불과 10개월 만에 비행 기록에서 유럽은 미국을 따라 잡았다. 동시대의 철학자 베르그송이 ‘창조적 진화(1907)’에서 강조한 ‘생명의 약동’이 항공 분야에서 일어난 셈이다. 1934년 프랑스로 귀화해 1964년 사망한 파르망은 영국과 프랑스 간 합작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의 삶은 두 단어로 요약된다. 자유와 도전.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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