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소요되는 국가조달 백신 제조·유통 카르텔(담합)과 관련해 의약품 도매업체 대표 3명, 백신 제약사 대표 및 임직원 4명 등 10명을 기소한 검찰 수사의 바탕에는 대검찰청과 조달청이 맺은 ‘공공조달 비리근절’ 업무협약(MOU)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조달청에서 제공받은 정부조달 입찰 관련 자료에 대한 내사를 벌인 뒤 이번 수사에 착수했다. 조달청이 검찰에 이같은 자료를 제공한 것은 지난 2018년 1월 맺은 MOU에 근거한 것이다. 검찰은 조달청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관련 정보를 공유 받았다. 이전까지는 공정거래위원회만 조달청으로부터 입찰 담합 의심 자료를 제공 받아왔다.
검찰은 내사 과정에서 NIP 조달입찰 과정에 장기간 고착돼 있던 제약업계의 카르텔을 포착했다고 한다. 또 업체들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함으로써 국가조달시스템의 공정성, 보건복지·국방 등 사회안전망 등을 심각히 훼손하고 대규모의 국고손실, 신생아·서민 피해를 초래한 정황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구상엽 부장검사)에 맡겼다. 옛 특수부인 반부패수사부 중에서도 전국 검찰청 중 최선임 부서다. 이는 거대 다국적기업이 많은 제약산업에 대한 수사는 규모 및 난이도가 커서 단기간에 수사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설명이다. 반부패수사1부는 이 사건 수사를 위해 커 공정거래, 의료, 경제, 외국기업 수사 전문검사를 모아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13일 제약사와 도매업체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특정 기업, 인물을 대상으로 하거나 이해관계자 제보에 의존하는 특별수사 실무에서 진일보한 것”이라며 “형법상 자수에 근거한 형사 리니언시도 적극 활용해 업계 전반의 구조적 비리를 적출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담합에 관여된 사업체 뿐만 아니라 실행위자에 대해서도 형사처벌 하기 위해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도 행사했다. 이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1조 제3항에 규정된 권한이다.
현재까지 이뤄진 검찰 수사에서는 크게 3가지 비리가 발각됐다. △신생아 BCG 백신 납품비리 △의약품 도매업체들의 대규모 백신 입찰담합 △제약사 임직원의 조달청 백신 입찰 관련 뒷돈 거래 등이다. BCG 백신과 관련해서는 140억원 상당의 국고손실이 적발됐다. 입찰담합은 134건, 5,000억원대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했다. 도매업체와 제약사 간에 오간 30억여원의 뒷돈도 나왔다.
이번 수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 때 강조한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총장은 지난 7월 취임사에서 “권력기관의 정치ㆍ선거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 교란 반칙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취임 직후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반부패수사1부장에 공정거래 수사 전문가인 구 부장검사를 앉힌 것도 이같은 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 발표 자료에서 조달청 입찰 담합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행정단속이 이뤄져왔으나 담합 억제력의 효과는 미약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수사로 비리가 밝혀진 업체와 임직원 상당수가 과거 공정위가 조사한 사건들에서도 개입된 바 있으나 공정위 단속 이후에도 장기간 범행을 계속해 왔다는 설명이다. 당시 공정위는 일부 업체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업계 전반에 고착된 카르텔의 구조적 비리 척결을 위해 계속 수사 중에 있다”며 “기타 혐의 업체 및 공범 등에 대해서는 추후 처리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입찰 담합으로 인한 국고손실 환수도 병행하여 추진 중”이라며 “관련 시장 및 피해규모 등에 대한 경제분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