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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축 잇는 中 대운하, 수·당의 고구려 침략때 군사보급로 활용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 이야기] <2-1> '中통합 프로젝트' 대운하

"돛대가 숲 이뤄" 조선 기행문에도 등장

대운하의 종점인 베이징 구간에 놓여 있는 ‘바리차오’의 현재 모습. 가운데 물이 흐르지 않는 황색이 원래 다리이고 양옆으로 놓인 흰색은 현대 들어 추가한 것이다.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에 따르면 한 무제 시기인 기원전 109년 고대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동원된 군사는 모두 5만명이었다. 이들은 만주에서 고대조선과 전쟁을 치렀는데 결국 조선은 1년여 만에 정복됐다. 약 700년이 흐른 기원후 612년 수 양제는 고구려 원정에 무려 113만명을 동원했다. 실제 전투병이 이 정도고 보급을 위한 인력은 두 배가 넘었다고 한다. 대규모 인원과 물자를 만주로 동원할 수 있었던 바탕은 바로 대운하였다. 대운하라는 인프라가 중국 남부의 물자를 전선으로 옮겨 대규모 전쟁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 영화 ‘안시성’에서 재조명받은 당 태종의 고구려 침략에도 대운하가 이용됐다. 대운하를 활용한 중국의 총력전에 당시 동북아시아의 패자였던 고구려도 힘에 부쳤다.

대운하는 전통시대 기행문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인 1488년 최부가 쓴 ‘표해록’이다. 그는 제주도로 파견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동중국해를 표류했고 구사일생으로 저장성 타이저우에 도착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명나라를 내륙으로 종단했는데 저장성 항저우에서 베이징까지 대운하를 통해 이동하면서 풍경을 적은 것이 지금까지 당시의 중국 상황을 묘사한 고전으로 남아 있다. 최부는 항저우 운하를 보고는 “각지의 상선이 모여들어 배의 돛대가 마치 숲처럼 빽빽하다”고 적었다.



조선시대에는 베이징으로 사신들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만주를 통과한 후 베이징 인근에서 대운하를 이용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나 홍대용의 ‘을병연행록’을 보면 베이징에 진입하기 직전 대운하에 놓인 ‘바리차오(팔리교)’를 건넜다고 돼 있다. 베이징의 관문으로서 바리차오는 길고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 위치였던 셈이다. 다리는 지금도 보존돼 있다.
/베이징·항저우(글·사진)=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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