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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이사람] 키크니 "한 컷 만화에 웃음·위로...독자와 소통, 더 다양한 이야기 담고싶어"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작가 키크니

댓글로 사연 남기면 한컷 만화로 그려줘

로봇·냉장고부터 반려동물 마음까지 표현

얼굴 등 신상공개 안 한 채 활동하지만

'신박하다' 인기...인스타그램 팔로어 39만

가장역할에 기계처럼 그리다 몸 나빠져

'일상 만화' 독자들 공감에 다시 일어서

더 소통하며 그림으로 웃겨드리고 싶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작업실에서 작가 키크니가 자신의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오승현기자




자신을 산속 나무에 묶어 둔 채 저 멀리 걸어가는 주인. 그런 주인을 끝까지 바라보는 이름 모를 개. 평생 믿고 따르던 주인의 마지막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유기견은 주인을 향해 “조금만 천천히 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이후 유기견은 사람들에게 발견돼 ‘산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글로 표현하려면 몇 줄씩 써 내려가야 하는 이 가슴 절절한 사연은 요즘 대세로 떠오른 일상만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을 연재 중인 작가 키크니의 손끝에서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남한산성 산책로에 버려진 유기견의 마음을 그려달라’는 독자의 사연을 받아 그린 그림 속 동글동글한 유기견의 뒷모습이 애처롭다. 사연은 작가의 마음에도 두고두고 남았다. 작가는 “좋은 가족을 만났을까 사연자 분께 연락드려보니 상황이 많이 안 좋다고 한다. 산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산이’의 그림 두 컷을 더 그렸다.

/자료제공=키크니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은 독자 주문형 연재만화다. 독자들이 키크니의 인스타그램에 사연을 남기면 한 컷의 그림으로 그려준다. 지난 2018년 7월부터 매주 1~2개씩 총 120여개의 사연이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사람뿐 아니라 로봇, 말 못하는 애완동물, 생명을 부여받은 사물들까지 다양하다. 가볍게 툭툭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재미와 감동·메시지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수많은 이들이 키크니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훤칠한 키에 안경을 쓴, ‘일상만화’ 속 후드티를 입은 키크니 캐릭터 그대로였다. 평소 자신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등 대외적으로 자신을 철저히 숨겨온 터라 키크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질문에 그는 “10년 차 일러스트레이터로 이제 막 시작한 신인 만화가”라고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상만화’와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이라는 주문제작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은 “소통하며 재밌게 작업하고 싶어서”라고 덧붙였다.

/자료제공=키크니


그가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이라는 타이틀로 그린 첫 그림은 ‘제 미래의 남자친구를 그려달라’는 사연이었다. 그는 2080년 할머니가 된 ‘사연자’ 앞에 장미꽃을 들고 고백하는 로봇 그림과 함께 ‘로봇 00325가 프로포즈를 신청하였습니다’라는 짤막한 글을 달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스타그램 조회 수는 수십만 건으로 치솟고 ‘신박하다’ ‘너무 재미있다’ 등의 열띤 반응이 쏟아졌다. 이후 그려내는 작품마다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고 ‘이런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팔로어가 하루 사이에 6만~7만명이나 늘어나 있었다. 그 후로도 그림을 그려 올릴 때마다 한동안 팔로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하여튼 믿어지지가 않았다”고 했다. 몇십 명 수준으로 시작했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는 현재 39만여명에 달한다. 웬만한 스타들보다 많은 수준이다.

/자료제공=키크니


팬들이 키크니의 그림에 열광하는 것은 사연을 토대로 그림에 녹여낸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 때문이다. ‘아버지랑 부녀끼리 여행 다니는 모습을 보고 하늘에서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실지 그려주세요’라는 사연은 하늘에서 두 손으로 비를 막아주는 구름과 그 아래 부녀가 환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그림 속에는 ‘엄마 바쁘다’라는 짤막한 글도 담겼다. ‘소방관입니다. 멋지게 불 끄는 모습 그려주세요’라는 요청에는 침대에 누워 발로 전원 스위치를 끄는 남성이 등장하고, ‘다이어트 중인데 너무 배고파요. 한밤중에 냉장고 뒤지는 그림 그려주세요’라는 요청에는 한밤중 잔뜩 화가 난 표정의 냉장고와 맞닥뜨리는 여성의 뒷모습과 함께 ‘거…거,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오’라는 냉장고의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자료제공=키크니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은 마감 전날 2~3시간에 걸쳐 그려진다. 그는 “그림은 금세 그리지만 일상생활 중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 사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대부분은 미리 머릿속에 구상해 놓는다”고 밝혔다. 평소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댓글 중 인상 깊은 것들은 따로 정리해 데이터화한 뒤 그림을 그리는 데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의 댓글은 저에게는 가장 큰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그만큼 독자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자료제공=키크니




그동안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을 묻자 암에 걸린 강아지 ‘또또’ 이야기를 꼽았다. “‘키우던 강아지가 암에 걸렸는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강아지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려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아 한 달 뒤쯤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게재된 시점에는 이미 또또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상태였어요. 그림에는 ‘강아지가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고맙다’고 사연을 보낸 사람이 댓글을 달았고 그림을 보신 분들이 강아지 주인의 계정에 위로의 댓글을 적어주시는 걸 보면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제 만화가 많은 분에게 감동을 전할 때 가장 기분이 좋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키크니는 만화가로 활동하기 전에는 잘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교과서에 들어가는 삽화부터 동화책 그림, 책 표지, 기업 홍보용 만화 등 그림과 관련된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습관 때문에 업계에서는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났고 4년 차 이후에는 굳이 따로 일을 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거리가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작스레 건강이 나빠졌고, 하던 일을 그만뒀다.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어릴 적부터 꿈꾸던 만화였다.

“어느 순간부터 집안에서 가장 노릇을 해야 했어요. 지난 8년간 하루 2~3시간씩 자면서 기계처럼 일해왔습니다. 돈벌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버는 족족 집으로 들어갔고,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었는데 너무 일만 하다 보니 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몸도, 정신도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스트레스가 컸나 봅니다. 산책이 좋다는 말에 하루 일고여덟 번씩 집 뒷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8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차피 그림을 그리고 살 거라면 재미있게 그리자’는 생각이 들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키크니라는 필명은 이때 생겼다. 대학 선배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을 무렵, 팀 이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때 선배의 여자친구가 선배는 코가 크니까 ‘코크니’, 작가에게는 키가 크니까 ‘키크니’로 하라고 해서 그때부터 ‘키크니’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선배는 장가를 갔고 지금은 키크니 혼자 남았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키크니. /사진제공=키크니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독자들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한다. 독자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모든 광고성 만화에는 반드시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품 이벤트가 걸려 있다. 독자들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유튜브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도 준비 중이다. 아직은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게 부담스럽지만 독자 분들과 소소하게 수다를 떨며 소통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들 계획이다.

그는 “그동안 무명작가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남에게 칭찬받고 공개되는 피드백 과정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올린 그림이 ‘좋다’ ‘재미있다’고 해주시니 그게 힘이 됐나 보다. 그때부터는 칭찬받고 싶은 생각에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맛이 나고, 살맛도 난다. 지금도 독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독자 요청이 올라오면 무엇이라도 그려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키크니의 최종 목표 역시 많은 독자와 소통하는 만화가다. “대단한 작가가 되고 싶은 목표는 없고, 인기가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거창한 목표보다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가늘고 길게 작업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사진=오승현기자

◇he is…

△2011년~ 일러스트레이터 △2018년 5월~ 인스타그램 ‘일상만화’ 연재 △2018년 7월~ 인스타그램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연재 △2019년 8월 웹툰 플랫폼 만화경 ‘별일 없이 산다’ 연재 중 △2020년 2월 말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어 39만여명 ◇저서: ‘일상, 다~ 반사’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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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16:33:04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