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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기술과 돈의 결합체, 근접신관

가미카제 물리친 1등 공신





1941년 5월6일 미국 버지니아주 달그런시 해군 병기 시험장. 국가표준국 무기개발부 연구원들이 VT 신관이 내장된 폭탄을 공중에서 떨어뜨렸다. 자유 낙하하던 폭탄은 해수면에 닿기 전에 터졌다. 시험 투하한 여섯 발 모두 같은 결과가 나왔다. VT 신관이란 전파 송수신기가 달린 뇌관. 송신장치에서 쏜 전파가 목표물에 맞고 돌아오는 반사파를 수신장치가 받아내 최적 근접거리에서 폭발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포탄이 적의 항공기 근처에서 자동으로 터진다는 얘기다. 참호에 웅크린 적군의 머리 위에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문제는 고도의 기술력과 자금이 필요했다는 점. 가장 먼저 개발에 나섰던 영국은 막대한 비용을 댈 수 없자 미국에 기초자료를 넘겼다. 미국 연구진은 더욱 골머리를 싸맸다. 로켓에 실렸던 영국제와 달리 폭탄 안에 집어넣으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주먹 크기의 VT 신관(해군의 5인치 함포탄 기준) 안에 표적과 거리 데이터를 주고받는 송신·수신 진공관과 공진기, 전기식 기폭장치를 넣는 것부터 어려웠다. 포탄 속의 진공관들은 발사할 때 화약의 폭발력과 강선을 따라 지구 중력의 2만배로 회전(2만G)하는 원심력까지 견뎌내야 했다.



독일은 일찌감치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중도에 손을 들었다. 제작비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기술력의 상징 격이던 독일이 포기한 VT 신관을 미국이 개발할 수 있던 배경은 경제력.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에 버금가는 10억달러를 투입해 종전까지 VT 신관 2,200만개를 만들어냈다.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 F-6F 헬켓 2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돈이 신관 하나에 투입된 것이다. 초기 가격은 1개당 732달러로 지프차(680달러)보다 비쌌다. 종전 무렵에는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며 개발돼 18달러로 낮아졌지만 이런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VT 신관은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제 몫을 다해냈다. 무인 지대지 공격기 격인 독일의 V-1로켓을 막고 유인 공대함 미사일 격인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기를 떨어뜨렸다. 일본의 마지막 발악이던 자살 공격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한 것도 VT 신관 내장 포탄과 자동 추적 레이더, 전자식 화력 제어 시스템이 연동되는 대공 화망 덕분이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반대 여론이 있었으나 ‘VT 신관 양산이 한 달 늦어지면 순양함 1척, 석 달 지연되면 전함 1척이 침몰될 것’이라는 논리가 먹혔다. 경제력과 경제논리, 인명 중시 사고가 전쟁의 승리를 이끈 셈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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