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백상논단] 기본소득 도입 시기상조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고부담·고복지 국가 핀란드 실험은

복지 부담 완화·근로유인 향상 목적

韓, 사회보장 개혁없인 도입 어려워

지금은 4차산업혁명 성장전략 짤 때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21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기본소득이 화두가 됐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일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고 언급하자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론화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고 한 민주당 의원은 ‘기본소득에 관한 법률 제정안’ 발의도 준비하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 고용 여부, 노동 의지 등과 무관하게 정부 재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최소 생활비를 ‘주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기본소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으로 시행된 긴급재난지원금과는 분명히 다르다.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30여년 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아직 전면적으로 시행한 사례는 없다.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과 기존 복지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어렵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대표적인 기본소득 도입사례로 핀란드가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25∼58세 실업자 2,000명을 임의 선정해 1인당 매월 560유로(약 76만원)씩 지급한 기본소득보장제 ‘실험’이 가장 많이 소개된다. 이 실험에 대해 핀란드 정부는 ‘고용 촉진 효과는 미미했지만 삶의 질 증진 면에서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제도를 전면 도입하지 않았고 실험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핀란드의 실험이 주는 교훈은 이 제도 실험의 성패가 아니라 기본소득 논의가 국가별로 상황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중이 한국은 11.1%에 불과하지만 핀란드는 28.7%에 달하고 있고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총 조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핀란드가 42.7%, 한국이 28.4%다. 고부담·고복지 체제에서 기존 복지를 줄이고 근로유인을 높이고자 기획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은 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혁명시대의 피할 수 없는 정책으로, 공급수요의 균형 파괴로 발생하는 구조적 불황을 국가재정에 의한 수요 확대로 이겨내는 경제정책인데 복지정책이라는 착각 속에서 재원 부족, 증세, 기존 복지 폐지, 노동의욕 저하, 국민반발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궁극적인 문제가 공급혁명이 아니라 소비와 분배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일자리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되면서 실직자가 늘고 소득이 줄면 초생산성 달성을 통해 획기적으로 늘어난 공급물량을 소화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불황을 데이터세, 탄소세, 로봇세, 국토보유세, 기본소득 목적세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총량 감소를 이유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훨씬 클 수 있다. 정부 재정문제가 말처럼 쉽게 해결될 수도 없다. 복지정책이면서 동시에 경제정책인 기본소득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 마치 기본소득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제대로 된 정책이 수립되기 어렵다.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혁하지 않고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코로나19로 35조원이 넘는 3차 추경까지 편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도입은 재정을 확실하게 망가지게 할 것이다. 지금은 위기극복과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되지 않는 것이 먼저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100m 경주 우승을 위해 달리기를 하라고 해서야 되겠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