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부터 장기 방영됐던 드라마 ‘수사반장’에선 당시로선 신약항암제인 ‘인터페론’ 약물을 국내에서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암환자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체내에서 면역기능을 활성화하는 단백질인 인터페론은 이처럼 바이러스와 암세포를 잡는 착한 신물질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악역으로도 변신하는 두 얼굴의 물질이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에게선 증세를 악화시키는 주범임이 밝혀진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본원과 국내 주요 병원 연구진이 공동연구를 통해 코로나19 환자의 병세를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과잉 염증반응인 ‘사이토카인 폭풍’의 원인을 규명했다고 13일 밝혔다. 코로나19 경증 및 중증환자를 비교연구 해보니 인터페론이 경증 환자의 면역세포에선 나타나지 않는 반면 중증 환자의 면역세포에선 발생해 과잉 염증반응을 초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이토카인은 면역세포로부터 분비되는 단백질 면역조절제다. 인체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였을 때 사이토카인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면역체계가 바이러스 뿐 아니라 정상 세포를 공격하기도 하는 데 이를 사이토카인 폭풍 현상이라고 한다. 공동연구팀은 중증 및 경증 코로나19 환자로부터 혈액을 얻은 후 면역세포들을 분리하고 단일 세포 유전자발현 분석이라는 최신 연구기법을 적용해 인터페론이 코로나19환자의 사이토카인 폭풍을 촉발한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기존에는 중증 코로나19 환자의 과잉 염증반응 완화를 위해 스테로이드제 등이 사용돼 왔지만 이번 연구 성과를 계기로 인터페론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방법도 모색될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중증 코로나19 환자의 과잉 염증반응을 완화해 환자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약물을 시험관 내에서 효율적으로 검색하고 발굴하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이번 연구의 주역은 KAIST의 신의철 의료과학대학원 교수와 정인경 생명과학과 교수팀, 김성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최준용·안진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 정혜원 충북대병원 교수다. 아울러 KAIST의 이정석 의과대학원 연구원, 박성완 생명과학과 연구원이 공동연구를 주도했다. 이번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과 서경배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연구결과는 면역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사이언스 면역학(Science Immunology)의 지난 10일자에 게재됐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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